이춘재, 꼬리 밟히자 패턴 바꿔…자백 14건-처제 살인 분석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7일 21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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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1988년경 범행 장소와 수법을 바꿨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자 이전 방식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쇄살인범 정남규(50)처럼 주거지에서 다소 떨어진 ‘완충지역(버퍼존)’에서 피해자를 물색하던 방식을 잠시 썼다가 이를 버리고 유영철(49)처럼 주거지 인근에서 범행하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 범행은 경기 화성 연쇄살인 10건을 비롯해 수원에서 2건, 충북 청주에서 2건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1월 처제 이모 씨(당시 20세)를 강간 살인해 검거된 것까지 합하면 모두 15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의 범행은 시간 순으로 화성에서 1∼8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난 1기(1986년 9월∼1988년 9월)와 수원 여고생 살인 및 강도예비 사건이 일어난 2기(1988년 12월∼1989년 9월), 화성의 나머지 살인 2건과 청주 살인 3건이 발생한 3기(1990년 11월∼1994년 1월)로 나뉜다.

이 중 1기 범행의 발생 장소는 전형적인 ‘범행원’ 패턴을 보인다. 연쇄 범죄자는 거주지나 직장 등 지리적으로 익숙한 거점 주변에서 주로 피해자를 찾는다는 프로파일링(범죄유형분석) 이론이다. 범행 장소 중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곳을 직선으로 이은 뒤 이를 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리면 그 안에 범인의 거점이 있을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해외 연구 결과에서 비롯됐다.

1∼8번째 화성 사건이 발생한 지름 12.3km의 범행원 안에는 이춘재의 태안읍 진안리 본가와 안녕리 직장(I전기)이 모두 들어 있었다. 특히 이춘재의 통근길을 따라 4명의 피해자가 발견됐다. 2004년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경우도 20명의 피해자 중 19명이 그의 자택을 포함한 14km의 범행원 안에 암매장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춘재가 자백한 2기 범행의 장소는 화성이 아닌 수원이었다. 당시 2건의 여고생 살인사건은 이춘재의 본가에서 약 15.3km 떨어진 수원역을 중심으로 5.2km의 범행원 안에서 일어났다. 이는 연쇄살인범이 신분 노출을 우려해 거주지를 어느 정도 벗어날 때까지 이동하다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서면 그곳에서부터 피해자를 찾기 시작한다는 버퍼존 패턴으로 해석된다. 정남규가 인천 자택에서 멀리 떨어진 구리시 등에서 범행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임흠규 경찰청 과학수사운영계 프로파일러(경장)는 “범인들은 주로 (검거) 위험을 피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버퍼존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춘재가 1987년 처음으로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오르는 등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행 장소를 수원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원으로 경찰력을 분산시켜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 전 총경(73)은 “범인은 수원에서 범행한 뒤 기차를 타고 본가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1989년 9월 수원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가 검거돼 강도예비 등의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7개월 뒤인 11월부터 3기 범행이 시작됐다. 모두 이춘재의 화성 본가와 직장(청주의 한 골재회사) 인근이었다. 버퍼존이 아닌 거점 인근으로 범행 장소를 다시 옮긴 것이다. 김종길 군산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실패했던 방식을 버리고 검거될 위험으로부터 안전했던 이전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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