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앵그리 영맨[횡설수설/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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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反)중국 시위에 10대 청소년 2명이 잇달아 총상을 입으면서 다섯 달째로 접어든 홍콩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4일 밤 14세 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고, 앞서 1일엔 18세 고교 2학년생이 실탄에 가슴을 맞았다. 중고교생들은 집단 동맹휴업에 나서 격렬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당국의 복면금지법 시행까지 맞물리면서 10대 젊은이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홍콩 시위는 10, 20대 ‘앵그리 영맨’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20대 초중반인 조슈아 웡 등 데모시스토당 지도부도 10대 때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태어난 이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사라지고 홍콩의 자유가 말살될 것이라는 공포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들은 당국과 경찰, 기성세대를 모두 불신하면서 이른바 선봉대 역할을 맡아 방독면과 두건으로 무장하고 경찰과 맞서고 있다.

▷홍콩 당국의 강경 대응도 기름을 부었다. 당국이 4일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을 발표한 뒤 시위는 급격히 과격성을 띠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10대 소년의 총탄 피격을 갚아야 할 ‘피의 빚’이라고 규정하고 그 배후 책임자로 중국을 지목하며 중국계 은행과 점포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하철인 MTR에 불을 질러 MTR 운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던 본토 출신 중국인이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콩 시위는 ‘중국인 대 홍콩인’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은 이제 평화를 잃었다. 눈앞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특질은 10대 청소년이 잇달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데 대한 분노와 결합해 제어하기 어려운 질풍노도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격 시위는 당국의 유혈 진압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홍콩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쇼핑의 중심지로 불리던 홍콩은 점차 ‘유령도시’가 되고 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은행과 쇼핑몰도 문을 닫았다. 본토에서 대기 중인 무장 군경의 진입도 우려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어떤 힘도 중화민족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홍콩은 ‘자유주의 대 민족주의’의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대의가 민족주의 광풍에 굴복했던 역사가 되풀이될까 걱정이다. 과거 한국인에겐 선망하는 여행지였고 그래서 ‘홍콩 간다’는 시쳇말로 남아 있는 그곳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홍콩시위#반중 시위#앵그리 영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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