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는 ‘자전거 외교’ 필요”… 마지막 충언[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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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北 도발엔 국제사회 한목소리
“대화와 제재 균형 잡기 어려워”

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제74차 유엔 총회가 열린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이날 유엔 총회 연설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숙소 앞에는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호텔 앞 경호용 철제 바리케이드에 ‘이문덕’이라는 글자가 적힌 파란 풍선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다른 정상들의 숙소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한 여성 지지자는 “이문덕은 ‘이게 다 문재인 덕분이다’라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풍선에는 ‘함께 가는 평화의 길!!’이라는 글씨도 보였다. 대통령에게 거는 지지자들의 기대감도 전해졌다.

한국인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올해 유엔 무대에서 한반도 평화의 길은 여전히 멀어 보였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반복하던 2017년보다 한반도 정세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살얼음판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유엔 무대에서는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올 것처럼 훈풍이 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 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용기를 치켜세우고 문 대통령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북)’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고 했다. 그전엔 말도 섞지 않았던 남과 북의 유엔 대사들이 안부를 주고받고 사석에서 만날 정도로 거리감을 좁혔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열렸던 올해 유엔 총회 기간에는 이런 온기가 많이 식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의 연설에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미국, 우리에 대한 비난 수위가 다시 높아졌다. 비핵화 의지 언급은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덕담이 없었다. 남과 북의 유엔 대사도 지난해에 비해 데면데면해졌다. 교착 상태 끝에 이달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됐지만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3년간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한 한반도 정세를 유엔 무대에서 경험한 조태열 주유엔 한국대사는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은 시간이 북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 모멘텀을 위해 끝까지 유연하게 간다는 보장도 없고, 북한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40년 공직생활을 끝내고 이달 중순 귀임하는 조 대사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던) 2017년에는 국제사회가 단합된 외교를 해서 (대응이) 쉬웠는데 작년 초부터 대화와 제재가 함께 이뤄져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유관국과 조율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공통의 목표가 분명한 갈등 상황보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해야 하는 대화 국면이 유엔 외교관에게 더 어려운 시기였다는 것이다.

떠나는 그는 “우리 외교 안보 환경이 앞으로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국감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도 “지금보다 앞으로 훨씬 더 힘들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는데, 동의한다”고 말을 받았다.

“자전거 브레이크처럼 조였다 풀었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위원회와 협의하고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소통하며 관리했다. 미국 등 주요 관계국과 의사소통하면서 한 치의 불필요한 오해나 불신 없이 완벽한 소통 속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외교관으로서, 유엔 대사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3년을 보냈다.”

자전거를 타듯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조 대사의 ‘자전거 외교’ 고백은 험난한 길을 헤쳐가야 할 한국 외교에 주는 힌트처럼 들렸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유엔 총회#북미 협상#자전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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