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의 魔性[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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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경기 군포 안양 지역에서 컴퓨터 부품회사 영업사원 김윤철이 여성 3명을 연속해서 강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퇴근하다 젊은 여성 취객을 발견하고 자기 차에 태웠다가 범죄를 저질렀다. 한 달이 안 돼 취하지도 않은 젊은 여성을 퇴근길에 태워준다고 유인해서, 그러곤 또다시 한 달이 안 돼 이번엔 젊은 여성을 강제로 태워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범죄 연구자들과의 대화에서 처음에는 어찌하다 사람을 죽이게 됐는데 두 번째부터는 복종시키는 재미랄까 그런 것이 자꾸 떠올라서 저질렀다고 했다. 또 처음에는 사람이 너무 쉽게 죽는 데 놀랐으나 두 번째는 죽이려고 하니 이러면 죽는구나 알게 됐고, 세 번째는 죽이는 방법을 알고 달려들어 죽였다고 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어난 경기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서 첫 피해자인 71세 할머니에게는 성폭행 흔적이 없었으나 두 번째부터는 모두 있었다. 두 번째는 맞선 보고 돌아온 20대 여성, 세 번째는 갓 결혼한 20대 신부였다. 네 번째는 비 오는 날 20대 여성이었는데 이때부터는 신체에 가한 난행이 발견됐다. 다섯 번째는 10대 여고생, 여섯 번째는 봄밤 남편 마중 나간 29세 주부였다. 일곱 번째는 50대 여성이었는데 몸 안에서 복숭아 9조각이 발견됐고 여덟 번째 13세 여중생의 몸 안에서도 볼펜 숟가락 포크 등이 발견됐다. 범죄를 반복하면서 단순 살인에서 강간 살인으로, 다시 변태성 강간 살인으로 잔인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1994년 처제 강간 살인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이춘재가 DNA 분석 결과 화성 연쇄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데 이어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다른 미제 살인 사건 5건과 강간 사건 30여 건도 자백했다. 사실이라면 살인 피해자는 15명에 이른다. 하지만 자백에도 불구하고 그가 체포 전에 지은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는 지나버렸다. 자백은 진실을 밝히는 것 외에 형벌을 가중시키는 효과는 없다. 설혹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법원이 무기징역보다 높은 사형을 선고한다 해도 정부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니 결과는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살인자의 마성(魔性)을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직후 저지른 한두 차례의 강간 살인이 발각되지 않고 지나가자 그에 탐닉해 체포될 때까지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동네 누나와의 첫 성관계가 왜곡된 성 집착을 키웠다고 한다. 그가 출옥을 꿈꾸며 1급 모범수로 생활해 특사 심사 대상에 올랐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춘재#화성 연쇄 살인 사건#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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