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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사건과 ‘거꾸로’ 검찰개혁[오늘과 내일/정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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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사건과 ‘거꾸로’ 검찰개혁[오늘과 내일/정원수]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19-10-02 03:00수정 2019-10-0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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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권력에 더 가혹해야 정파가 아닌 국민을 위한 수사
정원수 사회부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여야 충돌 끝에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직후인 올 5월 초 한 변호사단체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전날 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실세 중진 의원과 통음했다고 했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시급한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여당 의원은 검찰의 과거 수사 사례들을 열거하며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가장 먼저 예로 든 검찰 수사의 실패 사례는 박근혜 정부 집권 2, 3년 차 때 벌어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다. “그때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국정농단 사건을 막을 수 있었는데, 검찰이 정치적으로 수사했다. 정치 검사의 대표적 사례”라는 취지로 혹평했다고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2017년 5월 11일 조 장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된 당일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2014, 2015년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할 말이 많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가면서 수사했다”며 억울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대에는 못 미쳤을 수는 있지만 수사팀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의를 외면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정의를 외면한 수사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팀 검사들을 정치 검사로 낙인찍어 한직으로 내몰았다. 대다수는 모멸감에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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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내부에선 다른 이유로 정윤회 문건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8월 27일 조 장관 관련 첫 압수수색 이후 주변에 과거 검찰이 수사한 다른 사건과 함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언급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더 자세한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집권 3년 차에 터진 여권을 향한 수사를 머뭇거리면 검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나중에 왜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는 것은 물론 청와대에 경고를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는 원망까지 검찰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 역사를 보면 미 군정기의 경찰이, 권위주의 정권 때 정보기관이, 민주화 이후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사회적 약자에겐 가혹했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윤 총장처럼 두려움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했던 여당은 갑자기 거꾸로 가고 있다.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용기”라고 답했다. 취임식에서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은 특정 세력이 아닌 국민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며 국민을 24번이나 언급했다. 임명 직후엔 후배 검사들에게 “여러분들이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면 내가 2년 임기를 못 채울지 모른다. 개의치 말라”고 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윤 총장의 수사가 막힌다면 문 정부의 검찰 개혁 동력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이미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런 냉소가 퍼지고 있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니냐. 진정한 검찰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검찰을 바로 세우는 진짜 개혁의 방향을 고민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검경 수사권 조정#패스트트랙#공수처 신설#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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