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6하원칙과 어른 없는 사회[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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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낙인’ 피하는 데 급급한 기성세대
제대로 된 ‘어른’ 역할 해야 사회도 존속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얼마 전 모임에서 들은 말이다.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내가 왕년에), HOW(어떻게 나한테), WHY(내가 그걸 왜). 이른바 꼰대 6하원칙이다. 여기에 해당하면 꼰대라고 한다. 꼰대는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에도 소개됐다. 직장 후배에게 사사건건 조언을 해대고 절대적 순종을 강요하는 한국인을 KKONDAE(꼰대)라고 했다.

40대 이상 직장인들에게 ‘꼰대 낙인’은 사회 부적응자급으로 인식되는 시대다.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나선 꼰대질이 규범적 틀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이는 우리를 지배해왔던 수직적 질서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꼰대식 조직관리는 사회가 단선적 발전 경로상에 있었을 때 생겨난 기형적 형태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철이 들 때쯤 외환위기를 목격했고, 대학을 졸업할 때는 ‘한때 존재했었다’고 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고성장의 세례를 거의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이들에게 과거는 유물일 뿐이다.

꼰대적 질서가 세대적 견제를 받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반(反)꼰대 논리에 밀려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세대 간 가치의 건강한 교류마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날 모임에서도 탈(脫)꼰대를 위한 각자의 경험과 시도가 마치 서사적 연대기처럼 장황하게 소개됐다. 반면 직장 후배들과 어떤 가치를 놓고 고민하고, 무엇을 전수할지에 대한 말은 별로 없었다. 사회의 가치가 기존에는 기성세대에서 신진세대로 흘렀다면 지금은 그 반대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매우 일방적인 흐름으로….

요즘 젊은층의 시대정신쯤으로 여겨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식의 논리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된 아파트 한 채 사기 어렵고, 결혼마저 인생의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세대다. 부모처럼 죽을 둥 살 둥 일하는 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로까지 치달으면 사회 자체가 존속될 수 없는 게 자본주의다.

근대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주화나 지폐가 아니라 생산설비의 총합 개념이다. 기계화된 생산이 시작되면서 인간의 노동 역시 성격과 형태가 달라졌다. 개인의 영역에 있던 노동이 기계와 결합되면서 집단화됐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의무교육 체계를 확립해 직업적 소명, 노동의 신성함 같은 가치를 생산해 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이 자본에 의해 수동적으로 동원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인간 자체의 자본화로 이어졌다. 현대 자본주의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혁신과 창의의 총합이다. 이게 되는 나라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도태된다.

꼰대 피해의식에 갇혀 있는 기성세대는 이런 말조차 꺼린다. 조언과 간섭의 경계가 모호해진 데다 ‘어른’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산업화 세대는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래됐고, 86세대는 지금 같아선 어른이 아닌 일종의 세력으로 남게 될 것 같다. 10년 전 두 전직 대통령이 한 해에 서거하고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자 ‘어른이 없는 사회’가 됐다는 우려가 쏟아진 적이 있다. 어른이 있건 없건 사회가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만 그 이후 한국 사회가 흘러온 경로는 반목과 가치의 혼돈으로 점철됐다. 사회가 파편화할수록 세대 간 종적 연대가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어른이 필요하다. 할 말은 하는 제대로 된 어른 말이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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