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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여왕이 존슨총리 편들어… 정치 중립의무 위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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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여왕이 존슨총리 편들어… 정치 중립의무 위반” 압박

이윤태 기자 입력 2019-09-28 03:00수정 2019-09-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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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브렉시트로 거세지는 영국 군주제 폐지 논란
6월 10일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93세 생일 축하 행사에 왕실 가족이 총출동했다. 윌리엄 왕세손, 캐서린 세손빈, 커밀라 콘월 공작부인, 찰스 왕세자, 여왕,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 해리 왕손, 메건 마클 왕손빈(앞줄 왼쪽부터, 어린이 제외)이 서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정국에서 강경한 찬성론자인 보리스 존슨 총리의 편을 들었다는 비판이 불거지면서 군주제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영국 대법원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해 ‘의회 정회’를 강행한 보리스 존슨 총리의 결정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24일. 7월 24일 취임해 두 달 만에 최단명 총리가 될 위기에 놓인 존슨 총리의 거취도 문제지만 불똥이 다른 곳으로도 튀고 있다.

BBC는 “이날 판결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정치적 폭풍의 한가운데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존슨 총리는 여왕에게 “새 의회 개회를 알리는 연설을 당초 예정된 9월 3일이 아닌 10월 14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왕은 새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제1야당 노동당 일각에서 “브렉시트 연기 논의를 차단하려는 총리의 ‘꼼수’에 여왕이 동조했다.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군주제 폐지를 강하게 거론하기 시작했다. 존슨 총리가 사퇴하고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 여왕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끌었던 영국 왕실이 왜 이렇게 흔들리고 있을까.



○ “21세기에 군주제가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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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세계 군주 중 최고령(93세) 및 최장 기간 재위(67년)하고 있는 군주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부터 존슨까지 총리만 14명을 맞았다. 여왕은 영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52개국의 공식 수장이다. 53개국 인구만 약 24억 명으로 세계 70억 인구의 34.3%에 달한다.

군주가 영국민과 영연방을 결속시키는 상징으로 남을 뿐 정치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원칙은 18세기 초 확립됐다. 1714년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되자 방계 자손인 독일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크 1세가 영국식 이름 ‘조지 1세’를 얻어 즉위했다. 54세에 타국 왕이 된 그는 영어를 못했고 정치에도 무관심했다. 국무회의 주재조차 귀찮아했다. 결국 1721년 로버트 월폴 총리에게 국무회의 관련 전권을 넘겼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가 탄생한 계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국민의 반(反)독일 감정이 고조되자 1917년 조지 5세는 왕가의 성(姓)까지 ‘윈저’로 바꿨다. 독일에 남아 있던 일부 지위와 직함도 다 포기하며 독일색을 지웠다. 후임자 조지 6세는 말을 더듬는 약점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디오 연설로 국민의 승전 의지를 북돋웠다. 이 과정은 콜린 퍼스 주연의 영화 ‘킹스 스피치’에 잘 드러난다. 조지 6세와 가족들은 독일군 폭격을 피해 교외로 피신하라는 각료들의 주장을 거부했다. 런던에 남아 버킹엄궁을 지켰고 공습으로 파괴된 시내 곳곳을 돌며 전쟁에 피폐해진 국민들을 위로했다.

그런 만큼 영국인에게 현 왕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1세기에 군주제가 웬 말이냐?”는 일각의 비판에도 존속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다.


○ 각종 추문에 돈 낭비 비판까지


엘리자베스 2세는 최장기 재위 군주지만 역설적으로 왕실 폐지 논란은 그의 재위 기간에 본격화됐다. 3남 1녀인 여왕의 네 자녀 중 막내 에드워드 왕자(55)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첫 결혼에 실패했다. 각각의 이혼 과정도 순탄치 않아 황색 언론의 단골 먹잇감이 됐다. 특히 찰스 왕세자(71)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이혼, 다이애나빈의 비극적 죽음 등은 군주제 폐지론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차남 앤드루 왕자(59)가 말썽이다. 그는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어울려 각종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엡스타인의 마사지사였던 미국 여성 버지니아 주프레는 “16세 때부터 수차례 앤드루 왕자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왕실과 왕자 본인은 모두 이를 부인했지만 역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수감됐던 엡스타인이 지난달 미국 뉴욕주의 한 감옥에서 자살하면서 되레 관련 보도만 더 늘어났다. 앤드루 왕자의 각종 염문, 성추문 등 전력도 논란을 부추겼다.

찰스 왕세자의 차남 해리 왕손(35)은 10대 시절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폭로됐다. 21세에는 나치 제복을 입고 파티에 등장해 논란을 일으켰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여성들과 누드 파티도 즐겼다. 그는 2005∼2015년 군복무를 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이미지를 만회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한 뒤 뜻하지 않게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겉으로는 ‘환경보호 투사’를 자처하는 이들 부부가 거주지 개조에 많은 돈을 쓰고, 에너지 낭비가 심한 전용기를 자주 이용하며, 각국 부자들의 호화 파티에 단골로 등장한다는 점을 두고 위선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왕실 유지에 막대한 돈이 쓰인다는 점도 문제다. 영국 왕실이 공개한 2018∼2019 회계연도 자료에 따르면 왕실의 1년 지출액은 6700만 파운드(약 1000억 원)로 한 해 전보다 41% 증가했다. 예산 급증의 주 원인은 버킹엄궁 보수 공사 및 해리 왕손 부부의 거주지인 대저택 ‘프로그모어 코티지’ 개조 공사였다. 해리 왕손 부부의 결혼식 비용도 3200만 파운드(약 477억 원)에 달했다. 미 NBC는 왕실 측 주장과 달리 매년 영국 왕실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4억5000만 달러(약 5400억 원)로 왕실 자체 집계의 5배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군주제 폐지 논란은 엘리자베스 2세의 사후(死後)에 지금보다 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리서치회사 입소스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0%는 “군주제 폐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 여왕의 사망 후 왕실을 폐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50%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달 노동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가 공화제로의 전환을 원한다고 답했다. 군주제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명 중 1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93세인 엘리자베스 2세가 언제까지 왕위를 지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계승자 시대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노동당·영연방의 공화론자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유명한 공화론자다. 2015년 9월 대표가 된 그는 여왕과 고위 정치인의 정례 회동인 ‘추밀원’ 행사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추는 ‘충성 선서’를 거부했다. 추밀원은 영국 왕실의 오랜 정치 자문기관으로 지금은 상징적인 존재지만 위원들은 국가기밀 사항을 전달받는다. 당초 그는 이 행사에 불참하려 했지만 안보 관련 기밀정보를 고려해 가까스로 참석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공식 행사에서도 국가(國歌)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르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다.

당내에는 대표의 이런 노선에 동조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케이트 오사모 의원도 최근 브렉시트 논란으로 군주제 폐지론이 확산되자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다. “당신의 친척인 그리스 왕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떠올려라. 왕정 폐지였다.” 그리스의 마지막 군주인 콘스탄티노스 2세(79)는 1973년 공화제를 택한 국민들에게 쫓겨나 타국을 전전했다. 1990년대에는 아예 국적 박탈까지 당했고 왕실 재산을 두고 벌인 정부와의 소송에도 패했다. 2013년에야 입국을 허락받아 현재 아테네에 거주하고 있다.

최근 영국 소셜미디어에는 ‘왕정 폐지(#AbolishTheMonarchy)’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진보 정치인들의 비판에도 그간 왕정을 옹호해왔던 시민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독일 슈피겔은 “3년을 이끌어온 브렉시트 논쟁이 영국의 마지막 온전한 기둥인 여왕마저 무너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 영연방 국가에서도 공화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맬컴 턴불 전 호주 총리(2015∼2018년 재임)는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전제로 공화제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제1야당 노동당의 빌 쇼튼 대표도 “집권한다면 영연방 탈퇴 및 공화제 도입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2017년 총선을 앞두고 공화제로의 전환을 역설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시초로 꼽히는 1215년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 1689년 권리장전(영국 최초의 의회 제정법), 1721년 입헌군주제 도입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실은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스스로 내려놓으며 오랜 세월 존속해 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방식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과연 영국 왕실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영국#브렉시트#보리스 존슨#엘리자베스 2세 여왕#왕실#군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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