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복귀 뒤 곧바로 ‘검찰 경고’…文대통령, 발언의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7일 2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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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에 대한 경고에 나섰다. 미국 뉴욕 방문에서 돌아온 뒤 첫 메시지로 검찰을 겨냥한 것이다.

이례적인 문 대통령의 공개 경고에 검찰은 “검찰은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법 절차에 따라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52자의 짧은 분량이지만 사실상 문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국 정국’이 정치권을 넘어 청와대와 검찰이 맞서는 초유의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 文, 뉴욕 복귀 뒤 곧바로 ‘검찰 경고’

문 대통령이 이날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을 지적한 것은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별다른 통제 없이 수사권을 행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 방문 기간 중 진행된 검찰의 조 장관 자택 압수수색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먼저 조 장관의 유임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사실 관계 규명이나 조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지도 검찰의 수사 등 사법절차에 의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조 장관과 가족의 위법 사실이 드러난다면 문 대통령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문제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 주시기 바란다”며 “검찰 개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 같은 법·제도적 개혁뿐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 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성찰’이라는 표현이 핵심”이라며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인사권 등을 통해 강제로 검찰에 메스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참모는 “(문 대통령의) 고뇌에 찬 작심 발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등을 지적하면서도 조 장관이 압수수색에 나선 검사에게 전화를 건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검찰 관련 메시지를 밝힌 뒤 오후에 연가를 냈다.

○ 檢 “브리핑 자체가 간섭” 반발

그러나 검사들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노골적인 수사 개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청와대가 ‘아무런 간섭 없이’를 강조한 게 모순이다. 브리핑 내용 자체가 검찰에 대한 간섭”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에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이날 조 장관과 함께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윤모 총경에 대한 압수수색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이 공개 경고에 나선 만큼 강도 높은 쇄신책이 임박했다는 불안도 감지됐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치킨 게임에서 검찰이 무조건 죽는 시나리오가 돼 버렸다. 이제 와서 수사를 접을 수도 없고 출구가 없어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야권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그야말로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다. 명백한 검찰 겁박”이라고 성토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대통령의 권력이 노골적으로 검찰을 협박한 것”이라며 “범죄 피의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이 이제는 본인 스스로 불법에 손을 담그고 있다”고 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김정훈·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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