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과 전쟁 피하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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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 완료” 하루만에 수위 낮춰… 이란 막강한 군사력 보유 감안
공격때 중동 대혼란 우려한듯… 사우디도 보복 언급없이 예의주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폭과 관련해 이란 책임론을 강조하면서도 군사 대응에는 선을 그었다. 전날 트위터를 통해 ‘장전 완료’란 표현까지 쓰며 군사 조치를 시사했던 것에 비해 한결 신중해진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對)이란 군사 조치를 묻는 취재진에 “미국은 무시무시한 역량을 갖췄고 필요시 전쟁을 할 준비가 돼 있지만 확실히 그것(전쟁)을 피하고 싶다. 그들(이란)이 협상을 원하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 변화는 보복 공격이 낳을 엄청난 부작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 중동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 이란도 다시 사우디 등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해 중동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미국과 사우디 모두 당장 이란에 군사 보복을 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 국방부 역시 ‘절제된 대응’을 권고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익명의 국방부 당국자들은 이번 공격이 미국인이나 미국 시설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군사 대응을 하려면 미 행정부가 유효한 법적 근거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면 최소 7만 명의 미 중부사령부 병력이 위험해진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비롯해 군사적 대립 가능성도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전장이 생기면 부담이 커진다고 보는 셈이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제라는 ‘덫’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WP는 트럼프가 이란을 크게 위협해 국내 매파를 만족시키고 싶은 충동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핵 합의’ 업적을 이루려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문제라는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자신이 약해 보이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사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상당수 보유해 사우디, 이스라엘 등 적국을 언제든 타격할 수 있다. 이번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하는 예멘 후티 반군을 포함해 이라크 남부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정규군 등 중동 각국 시아파 무장단체 및 민병대도 사실상 관할권에 두고 있어 이들을 동원한 지상전 및 테러작전 수행도 가능하다. 특히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국가의 정규군은 대부분 용병이어서 투철한 애국심과 다양한 실전 경험을 보유한 이란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피해 당사자인 사우디도 아직 보복 공격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군 대변인인 투르키 알말리키 대령은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초기 조사 결과 이번 공격에 이란제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후티 반군의 주장처럼 공격이 예멘 영토에서 시작되지도 않았다”며 이란 책임론만 거론했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번 공격 조사에 유엔과 국제 전문가를 초청하겠다고 밝히며 조사 결과에 따라 안보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최지선 기자
#도널드 트럼프#이란 책임론#사우디아라비아#석유시설 피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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