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적 만드는 정치, 국익에는 도움 안 된다[광화문에서/윤완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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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얼마 전 타이베이에서 대만 집권당인 민진당 관계자를 만났다. 올해 7월 말 야당 국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시 시장이 내년 1월 대만 대선은 “양안관계(중국과 대만 관계)에서 평화로 가느냐, 전쟁으로 가느냐의 선택”이라고 말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 평화를 파괴하고 있는 건 대만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답했다. 이어 “국민당은 베이징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으로 평화를 얻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민진당이 미국과 밀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만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언급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의 대선 전략을 가늠할 수 있었다. 국민당을 선택하면 대만을 중국에 넘기는 것이고 민진당이 재집권해야만 안보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이분법이다. 그는 대만 대선이 미중 대리전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지만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음 날 타이베이에서 만난 국민당 관계자는 “국민당도 역시 친미”라며 미중 대리전 프레임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민진당이 계속 집권하면 대만이 전쟁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해 이분법의 다른 대척점에 서 있음을 드러냈다.

중국을 적대적 위협으로 규정한 민진당의 선명한 반(反)중국 노선은 홍콩의 반중국 반정부 시위와 맞물리면서 날개를 달았다.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민진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원인은 민생 문제였다.

민진당과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대척점에 중국 공산당이 있다. 민진당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한 중국은 대만의 수교국을 대상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하는 강경한 고립전략으로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중국의 의도와 다르게 강경책이 민진당을 도와주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7월 국민당 경선에서 한궈위 시장에게 패했음에도 여전히 지지율이 높은 궈타이밍(郭臺銘)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이 12일 국민당을 탈당했다. 그는 “중국과의 대화 채널이 전무한 차이 정권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젊은층과 중도층에 인기가 높은 민중당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도 14일 “차이 총통이 양안관계를 지나치게 경직시켰다”며 “대만의 주권, 민주주의, 자유는 차이 총통처럼 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두 사람의 연합설도 나온다. 양안관계에서 중간자 입장인 이들이 대선 도전을 공식화하면 중국과의 적대 구도만으로 차이 총통이 고공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홍콩 시위대 규모가 최근 다소 줄어든 건 중국 공산당의 강경한 대응 때문이 아니라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 철회라는 시위대의 요구 중 하나를 수용한 결과다. 중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무역전쟁을 벌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지율이 떨어지자 중국과 ‘중간단계 합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출구 없이 대립하는 정치는 단기간에 지지율을 올리기 쉬운 방식이겠지만 국익을 보장하는 최적의 방식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대만#양안관계#국민당#중국 공산당#홍콩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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