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일가족 덮친 화마…“살려야 한다” 이웃들의 헌신적 구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2일 1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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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이 쌓아둔 폐플라스틱 자루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2일 새벽 광주 광산구 송정동 한 아파트 5층에서 불이 나 일가족 2명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불이 나자 주민 20여 명이 30m 떨어진 재활용 처리장에서 폐플라스틱을 넣어둔 큰 자루 11개를 옮겨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이웃들이 쌓아둔 폐플라스틱 자루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2일 새벽 광주 광산구 송정동 한 아파트 5층에서 불이 나 일가족 2명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불이 나자 주민 20여 명이 30m 떨어진 재활용 처리장에서 폐플라스틱을 넣어둔 큰 자루 11개를 옮겨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12일 새벽 광주의 한 아파트에 화마가 일가족을 덮쳤다. 거센 화마에 잠을 자던 50대 부부가 숨졌다. 화마는 잠을 자던 두 자녀와 친구 등 3명에게도 덮쳤으나 이웃들의 헌신적 구조에 생명을 구했다.

12일 오전 4시경 광주 광산구 송정동 한 아파트 5층 A 씨(53)의 집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내부 76㎡공간을 무섭게 삼키려고 했다. 큰방에서 자고 있던 A 씨와 부인(50)은 긴박하게 탈출을 시도했다.

A 씨는 시커먼 연기와 불길을 뚫고 겨우 현관 옆 작은 방까지 도달했지만 부인은 거실에서 쓰러졌다. 현관 옆 작은 방에는 딸(22)이 탈출하지 못한 채 창문 밖에 매달려 있었다. 또 다른 작은 방에 있던 아들(23·대학3년)과 친구(24·대학3년)도 창문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화마는 이들 5명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맹렬하게 타 올랐고 아파트에는 화재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건너편 아파트 7층에 살고 있던 양만열 씨(46·자영업자)는 놀라 잠에서 주변을 살폈다. 건너편 아파트 5층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A 씨의 딸이 창문 밖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옆에는 A 씨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양 씨는 운동복 차림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그는 소화전을 찾아 진화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5층 A 씨의 집으로 진입하기 힘들어 주민들이 탈출해 현관문이 열려있던 4층 집으로 들어갔다. 세탁실 난간에 기대어 A씨의 딸에게 뛰어내리라고 외쳤다. 양 씨는 양팔을 벌리고 있다 뛰어내린 A 씨의 딸을 잡았다. 그 순간 세탁실 안으로 A 씨의 딸과 함께 넘어져 어깨를 다쳤다. 양 씨는 “평소 인사를 하던 이웃인 A 씨의 가족을 구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양 씨가 생명을 건 구조를 하던 순간 이웃 20여명은 매달려 있던 A 씨의 일가족을 구하기 위해 폐플라스틱 자루 11개를 모았다. 주민 박모 씨(47)는 “40대 남성 이웃이 A 씨 가족들이 떨어질 때 충격을 덜 받도록 폐플라스틱 자루를 아파트 화단에 가져다 놓자고 외쳤다”고 말했다. 또 “긴박한 도움요청에 이웃 20여명이 30m떨어진 재활용 창고에서 폐플라스틱 자루를 아파트 화단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A 씨의 아들과 친구는 5층에서 뛰어내렸고 이웃들이 쌓아둔 폐플라스틱 자루 옆 축축한 화단에 떨어져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도 뛰어내렸지만 출입문 지붕에 부딪쳐 숨졌다. A 씨의 부인은 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은 12일 오전 4시 20분에 119에 신고 돼 출동한 소방관 72명에 의해 21분 만에 진화됐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전동 킥보드를 고치다 잠을 잤다는 A 씨의 가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진동킥보드의 전기적 결함으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화재로 A 씨와 그의 부인이 숨지고 A 씨의 아들 등 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B 씨 등 이웃주민 15명이 연기를 흡입하는 경상을 입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웃들의 헌신적인 구조에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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