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냉면그릇 폭탄주” 강요… 5인미만 사업장 갑질 ‘호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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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1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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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고서를 보던 선임은 “선생님, 이런 거 한 번도 안써보셨어요? 다른 신입은 한 번에 딱딱 잘해오는데?”하면서 큰 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무시’에 해당)

#거의 10년 동안 일하던 회사에서 최근에 온 임원이랑 계속 부딪쳤어요. 그분이 저를 왕따를 시켰고 부서 왕따가 됐어요.(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따돌림’에 해당)

#대표이사는 냉면사발에 술을 섞어서 마시도록 강요를 합니다. 거절하면 어떤 식으로든 회사생활을 힘들게 만듭니다.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강요’에 해당)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금지법)이 7월16일 시행된 후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던 법적 사각지대의 일부가 해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동시에 사장갑질·가해자 처벌에 있어서한계도 발견됐다.

◇‘무시, 따돌림, 반성’ 도 직장 괴롭힘…법적 보호 가능해져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직장갑질 32개 유형 중 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부분은 절반인 15개에 불과했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갑질 예방매뉴얼’을 만들어 폭행, 폭언, 협박, 비하, 무시, 따돌림, 소문, 사적지시를 비롯, 괴롭힘의 유형을 32개로 나눴었다.

금지법 전 몇몇 유형은 Δ형사처벌 규정에 적용됐지만 형법의 특성 상 성립요건을 구체적으로 충족시키가 어려웠고 Δ근로기준법 위반 사례에 해당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못해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예를 들면 장기자랑은 근로기준법 제7조 ‘강제근로금지’조항 위반으로 신고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처벌강도가 다소 높아 기소하기는 어려웠다. 제7조 위반으로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염전노예’로 수년간 무임금으로 시달려야 법 적용이 됐다.

금지법 시행 후에는 좀 더 사적이고 은밀하게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직장 안에서의 괴롭힘을 더 구체적으로 쉽게 신고할 수 있게 됐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신설해 법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규정했다. 염전노예급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또 고용노동부도 직장갑질 119에서 정의한 32개 괴롭힘 유형과 비슷한 취지의 모범취업규칙 매뉴얼을 제작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12개와 기타 항목으로 괴롭힘 유형을 나누고 있는데 이는 직장갑질 119의 32개 유형을 대체로 포괄한다는 평이다. 강요, 따돌림, 소문 유형도 적용되는 것이다.

냉면사발에 술을 섞어서 마시도록 강요한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헌법 상 기본권 침해에 강요죄에 해당했지만 죄가 성립되기 어려웠다. 형법 상 강요죄는 폭행과 협박을 동원한 행위여야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지법 이후에는 이는 ‘강요’에 해당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대표이사가 가해자면 속수무책… 5인 미만 사업장도 문제

이제는 ‘폭언, 강요, 따돌림’등 직장 내 괴롭힘들이 노동법에 규정돼 제보하기가 수월해졌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괴롭힘 행위가 발견됐을 경우 사내에서 자율로 해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회사 안 피해자가 상사인 가해자를 사내 기구에 신고를 하더라도 사실상 상사가 스스로에게 제재를 가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상사가 대표이사거나 간부급이라면 갑질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결정권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대표이사가 가해자일 경우에는 기업 안에서 감사나 외부전문가, 외부기관이 조사할 것을 권고했다.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할 지방고용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고도 안내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사측의 가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Δ취해지는 조치는 개선지도가 전부이며 Δ사측이 개선지도를 따르지 않아도 추가조치는 차기 근로감독 사업장에 포함시키는 정도다.

노동청도 처벌조항이 없어 혼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다수의 피해자들이 노동청의 진정접수 단계에서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처벌조항이 없어 사실상 당장 취할 조치가 애매하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처벌이 가능한 각종 노동관계 법령 위반행위에도 해당할 경우 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처벌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폭행과 강제근로, 부당노동행위, 직장 내 성희롱 등 처벌이 가능한 다른 법령도 적용하라는 취지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괴롭힘을 받더라도 이를 호소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최저임금과 근로계약서 작성도 지켜지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 피해자들은 2중 고통을 호소 중이다. 그러나 금지법 적용 대상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실정이다.

직장갑질 119는 Δ대표이사가 가해자인 경우 최소한의 과태료 부과 등 규정 신설 Δ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강화 Δ5인미만 사업장도 적용되게 법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처벌조항을 전면적으로 강화하라는 내용의 의견은 없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탭은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현재 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단은 각 사업장과 노동청에서 적극적으로 괴롭힘 법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괴롭힘 관련 제보는 늘고 있다. 금지법 시행 후 1달 간 직장갑질 119에 들어온 제보 중 직장 내 괴롭힘에 관련된 제보는 1073건이었다. 이는 금지법이 시행된 후 괴롭힘 제보가 58.2%로 급증한 숫자다.

직장갑질 119는 19일 금지법 시행 2달을 맞아, 통계를 모아 국회에서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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