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일자리 정책 유비무환 정신으로[기고/이재갑]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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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주력산업이던 자동차공장 폐쇄 후 오히려 실업률이 감소한 벨기에의 림뷔르흐. 우리에게는 ‘플랜더스의 개’로 알려진 플랑드르(플랜더스) 지방의 도시다. 올 6월 고용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비결이 알고 싶어 플랑드르 지역고용청장과의 만남을 청했다. 비결은 바로 충분한 대비와 지역 단위의 소통이었다.

2015년 자동차공장의 폐쇄가 예정돼 고용위기가 우려되자 플랑드르 주정부는 노동시장에 닥칠 충격 완화를 위해 공장 폐쇄 2년 전인 2013년 ‘림뷔르흐 계획’을 세워 대비하기 시작했다. 경제 노동 교육 등 각 분야 전문가 12명이 모여 지역재생전략을 수립할 권한을 갖고 종합계획을 수립하면 지역고용청은 계획의 이행을 총괄했다. 지역 노동시장 문제를 놓고 지역 단위의 사회적 파트너들이 모여 양방향 소통을 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해나간 것이다. 플랑드르 주정부는 림뷔르흐 계획에 따라 지역 대체산업 육성과 퇴직자 취업 지원, 직업훈련센터 설립, 직업훈련 등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 결과 역내 최저 수준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역동적인 경제상황을 보이고 있다.

사업장 폐쇄 전에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해 위기에 대응한 벨기에 사례는 조선업 같은 주력 제조업 침체로 지역 노동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내외적으로 높은 불확실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국내 산업구조 재편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노동시장에는 언제든 고용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는 고용위기가 생기면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사업주의 경영상 어려움을 해소하고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주민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지역주민이 고용위기로 고통을 겪기 이전에 대응하는 것이 더욱 좋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지역 노동시장이 고용위기에 앞서 대응할 수 있도록 내년부터 ‘고용위기 선제대응패키지’ 공모사업을 펼친다.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사후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벗어나자는 취지다. 지역 노동시장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지역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중장기 우선순위를 정해 일자리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재정과 컨설팅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용위기 전(前) 단계 지역의 정책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중앙부처가 일자리사업을 지역에 내려보내는 방식을 탈피해 일자리 정책의 현장감과 체감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자동차를 비롯해 특정 제조업에 대한 고용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지역 일자리 정책을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뿌리가 튼튼해진 지역경제는 대내외 위기 상황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역 노동시장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이다. 지역주민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지역 일자리 정책에도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다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지역 일자리 정책#자동차공장 폐쇄#플랜더스의 개#노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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