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과 평화협정 취소에 美 거센 비난 여론… “트럼프 ‘협상의 기술’ 쇼맨십만 남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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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출신 담판능력 뽐냈지만 北-中-이란 등 협상상황 악화일로
공화당 일각선 ‘탈레반 초대’ 비난… “美대통령 별장에 테러범 부르나”

아프가니스탄, 중국, 이란, 북한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진행했던 주요 협상이 잇따라 중단되거나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에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사진)이 자신의 강점으로 과시했던 ‘협상의 기술’이 어디로 갔느냐는 비판도 거세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부터 협상 전문가임을 강조했지만 집권 후 잇따른 협상 실패로 내년 대선에서는 이를 주장할 근거가 거의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로 아프간 탈레반 반군과의 평화협정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2001년부터 18년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이 끝날 것이란 기대감만 잔뜩 부풀린 후 탈레반 지도자가 미국 땅을 밟은 날 협상 판을 엎었다. 그는 지난해 5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협정(JCPOA)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후 “이란과 새 협상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란의 반발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지난해 6월부터 세 차례나 만났지만 아직 비핵화 실무협상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세계 경기침체 우려만 높였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도 아직 의회 비준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미네소타)은 이날 CNN에 출연해 “아프간 평화협정 논의 중단은 북한과의 협상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쇼맨십만 즐길 뿐 디테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그 이전보다도 훨씬 악화된 상황에 놓였다”고 일갈했다. 특히 아프간과의 협상 중단은 이란, 이스라엘, 시리아 등 가뜩이나 현안이 많은 중동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어 미 정치권과 언론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집권 공화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8일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탈레반 지도부와 비밀 만남을 가지려고 했던 사실 자체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날은 미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꼽히는 2001년 9·11테러 발발 18주년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다. 테러의 주역 오사마 빈라덴을 숨겨 주는 데 일조했던 탈레반을 미국에 불러들였다는 점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9·11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장녀 리즈 체니 하원의원(공화·와이오밍)은 “캠프 데이비드는 당시 테러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미 지도자들이 모였던 곳”이라며 “탈레반의 어떤 구성원도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전직 관리도 이날 폴리티코에 “멍청한 계획”이라고 일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하루에만 폭스, CBS 등 5개 주요 방송사와 연쇄 인터뷰를 갖고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그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해 보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은 아프간 주둔 미군을 감축하기 위해 정치적 위험부담을 지려고 했다”며 “평화 협상을 하려면 종종 꽤 나쁜 행위자들을 다뤄야 한다”고 두둔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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