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 번도 경험 못 해본 마이너스 물가와 ‘D의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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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3일 발표한 8월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04% 하락해 1965년 통계집계 후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는 1월 0.8% 이후 계속 1%를 밑돌다가 지난달에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농수축산물과 석유 가격 하락 등 공급 측면에서의 일시적 요인 때문이라며 수요 둔화로 물가수준이 장기간에 걸쳐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의 물가 하락이 일시적인 공급 측 요인뿐만 아니라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도 적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진단도 있다.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경기 침체와 낮은 물가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대체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디플레이션이 더 무서울 수 있는 현상이다. 소비자와 기업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아 재고가 급증하면 가격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며칠 전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 대외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2.2%)를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총재 발언이 아니더라도 한일 간 경제 갈등 등 대외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이보다 우리 내부의 경제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제조업 생산능력이 역대 최장인 12개월 연속 하락하고 소비도 부진해 7월 소매 판매액이 전달보다 0.9% 줄었다.

정부가 조만간 소비, 관광 등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를 내놓기로 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반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내수활성화 대책은 물론이고 금융 재정 세제 규제개혁 등 모든 역량을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통계청#소비자 물가#물가 하락#경기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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