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정재락]주는 예산 거부하는 울산 북구의 기막힌 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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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농어촌 등 오지마을 주민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도입된 게 ‘마실버스’와 ‘마실택시’다.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이 운행하기 힘든 지역에 소형 버스나 택시로 주민을 수송하는 것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근거를 둔 것으로 자치단체는 대부분 도입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도 2015년 18개 마을에 마실택시를 처음 도입했다. 7월부터는 24개 마을에 마실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울산 북구 3개 마을에서도 4월부터 마실택시가 운행되고 있다. 울주군의 마실버스는 주민이 시내버스와 동일한 요금(교통카드 1250원, 현금 1300원)만 부담하면 나머지는 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마실택시는 주민이 1000원만 내고 택시를 이용하면 나머지 요금은 역시 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마실버스·택시가 없었던 오지마을 주민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등 외출이 쉽지 않았지만 이를 도입한 이후에는 이동 불편이 말끔히 사라졌다. 울산 북구 속심이 마을 주민 A 씨(84)는 “병원에 갈 때마다 객지에 있는 자식을 불렀지만 지금은 필요할 때마다 싼 요금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어 너무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울산의 각 자치단체에는 마실버스나 택시 운행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울산 북구에서 멀쩡하게 운행되고 있는 마실택시가 내년부터 운행이 중단될지 모를 위기에 처했다. 울산시는 내년도 예산에 ‘시내버스 이용 불편지역 지원사업비’로 1억4832만 원을 편성한 뒤 지난달 12일 북구에 내려보내려 했다. 북구 3개 마을의 마실택시 운영비를 편성했으니 주민이 부담하는 1000원 이외의 추가 요금을 택시 기사에게 지급하는 업무를 구가 맡아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북구는 ‘시내버스 이용불편지역 지원사업은 시 담당업무’라며 5일 뒤 구청장 직인이 찍힌 공문으로 ‘불가’ 통보를 했다. 시 관련 조례에 마실버스·택시 업무는 시의 업무로 되어 있어 구가 이 업무를 맡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시는 “울주군은 2015년부터 이 업무를 시에서 이관받아 수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북구의 주장이 군색한 변명처럼 들리는 이유다.

주민 편의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광역자치단체가 책정해 기초자치단체에 주려는데, 기초단체에서는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하는 기막힌 현상이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곳이라도 더 오지마을에 마실택시 운행을 늘려야 할 행정기관이 이미 운행 중인 마실택시 운행 업무조차 맡지 않으려는 이유가 ‘귀찮고 새로운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행태는 아닌지 심히 유감스럽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
#예산#울산 북구#마실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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