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4살 고교 총기난사범의 ‘100% 명중률’이 충격적인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0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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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세대 / 데이브 그로스먼, 크리스틴 폴슨 지음·오수원 옮김 / 328쪽·1만6000원·열린책들



인간의 직감이 때로는 기계보다 정확하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논쟁을 보며 든 생각이다. 비록 가상현실이라도 유혈이 낭자한 폭력 상황이 미칠 좋은 영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게임 속 구체적 상황을 활자로 만나니 그 잔인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심각성은 게임 업계의 로비로 가려져있다. ‘살인 세대’는 그 숨겨진 진실, 비디오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을 사례와 통계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97년 미국 켄터키 주 퍼두커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대학살’(저자는 총기난사 사건을 이렇게 불러 마땅하다고 주장한다)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열네 살 남학생이던 범인은 다섯 발은 피해자 머리에, 세 발은 상체에 명중했다. 명중률은 100%였다.

범인의 명중률이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타인을 죽이길 거부하는 본성을 지녔다. 때문에 직업 군인이나 경찰도 누군가를 사살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근접 전투에서 실제로 총기를 발포한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투 시뮬레이션’ 훈련이 도입되자 미군의 총기 발사 비율은 6·25전쟁에서 55%, 베트남전쟁에서 95%까지 상승했다.

살상을 꺼려하는 인간 본성은, 미국 검경이 간주하는 보통 수준의 명중률이 50%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년은 사건 며칠 전 훔친 총과 총알 두 세트로 사격 연습을 해본 것 외에는 총을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그의 냉혹한 잔인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반적으로 총격에서 인간의 머리를 겨누는 건 극단적 원한일 경우가 아니라면 극히 드물다. 그런데 퍼두커 사건의 범인은 정확히 피해자의 머리를 겨눴다. 이는 비디오 사격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주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인칭 슈팅 비디오게임을 했던 이 소년은 사실상 매일 밤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인 습관’을 신경세포에 각인시키며 살인에 관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퍼두커 ‘대학살’ 말고도 비디오게임이 폭력성을 붙잡아둘 고삐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독일 본 대학에서 20, 30대 슈팅 게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뇌 스캔 실험에서는, 사용자들이 실제 폭력적 이미지를 봤을 때도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 도호쿠 의과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컴퓨터게임을 한 아동은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발달 둔화 우려가 있었다.

물론 “비디오게임을 하고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다수”라는 반론을 저자도 인정한다. 문제는 소수일지언정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심층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선 총기 난사 사건으로 462명이 사망했고, 1314명이 다쳤다.

대표 저자 그로스먼은 23년간 군에서 복무한 심리학자다. 그가 살인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저항감을 쓴 책 ‘살인의 심리학’은 40만 부 넘게 팔리고 미 군사기관의 필독서에 올랐다. 미디어 중독 치료 교육을 하는 공동 저자와 함께 강조하는 건 예방이다. 다행히 게임 중독자라고 해도 뇌가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진 않는다고 한다.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등 실천 방법부터 부모가 활용 가능한 자료까지도 함께 정리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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