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 음향과 투박한 포크 감성의 공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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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밴드 ‘본 이베어’ 4집 ‘i, i’ 내… 전곡에 흐르는 관현악 인상적

미국의 세계적 인디밴드 ‘본 이베어’ 리더 저스틴 버논. 사진처럼 기묘한 음향 콜라주가 신작에서 낯설게 사각댄다. 리플레이뮤직 제공
미국의 세계적 인디밴드 ‘본 이베어’ 리더 저스틴 버논. 사진처럼 기묘한 음향 콜라주가 신작에서 낯설게 사각댄다. 리플레이뮤직 제공
“본 이베어는 잔잔하게 틀어두면 분위기는 좋은데, 어떤 포인트에서 극찬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얼마 전 한 방송작가의 심경 토로다. ‘본 이베어’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저스틴 버논(38)이 이끄는 밴드. 이들의 음악은 일견 달다. 우유 한 모금 머금은 듯 먹먹하고 아름다운 가성(假聲), 따사로운 멜로디와 낭만적 분위기…. 그러나 이런 특질이 때로 변덕스러운 전개와 실험적 음향을 만나 이루는 이율배반적 불친절이야말로 본 이베어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30일 CD와 LP로 발매한 4집 ‘i, i’는 본 이베어의 세계가 다다른 또 다른 계절의 진경이다. 버논의 뿌리인 미국적 모던 포크 서정을 가사와 선율의 뼈대에 두되, 스피커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를 빼곡히 채운 음향 실험. 내부에 첨단 힙합과 R&B의 영향까지 절묘하게 흡수했다.

전곡에 걸친 관악단의 활약에 주목할 만하다. 녹음실 잡음 같은 짧은 서곡에 이어 등장하는 ‘iMi’부터 총공격이다. 관현악 편곡자 롭 무스,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크리스 메시나가 짠 기괴하게 아름다운 음향 그물. 그 촘촘한 그물코 사이를 버논의 투박한 포크 감성이 묘기처럼 가볍게 통과한다. 이어지는 ‘We’는 북미 원주민의 원초적 구음을 왼쪽 원경에 둔 채 래퍼처럼 서늘하게 던지는 버논의 보컬이 인상적. ‘Holyfields,’와 ‘Jelmore’는 이를테면 인공 채소로 만든 건강 샐러드다. 전작 ‘22, A Million’(2016년)풍의 분절된 전자음향을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 같은 선율과 현악에 시침 뚝 떼고 얹은 ‘Holyfields,’가 특히 그렇다.

중반부 여러 곡은 가스펠만큼 감동적이다. ‘Hey, Ma’ ‘U(Man Like)’ ‘Faith’ ‘Salem’…. 특히나 ‘Naeem’은 저돌적 드럼과 관악에 합창까지 얹었다. ‘I can here crying’의 반복 구절 악보는 교회성가대에 맡기고 싶어진다. ‘Sh‘Diah’에서 마이클 루이스의 유장한 색소폰 솔로는 앨범의 종장을 휘황한 노을처럼 수놓아 버린다.

본 이베어는 버논이 연인과 이별한 겨울, 위스콘신주의 얼어붙은 오두막에 혼자 틀어박혀 만든 저예산 데뷔작 ‘For Emma, Forever Ago’(2007년)로 음악 팬들을 매료했다. 포크로 출발했지만 앨범마다 대담한 실험으로 나아갔다. 내재한 음악의 밀림을 조금씩 보여줬다.

유행의 격류에 떠내려가지 않을 기묘하고 신선한 발라드 모음집이다. 버논은 “1, 2, 3집에서 각각 겨울, 봄, 여름을 다뤘고 신작은 가을”이라고 했다. 수확의 계절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본 이베어#인디밴드#포크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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