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R&D 지원만으론 한계… 대기업과 국산화 생태계 조성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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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부품산업 경쟁력 제고’ 포럼

“수소전기차용 핵심 부품인 수소센서(감지기)의 국산화에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일본 기업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국산화는 웬만한 각오 없이는 할 수 없다.”

2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주최한 ‘자동차 소재 부품 산업 기술경쟁력 제고방안’ 포럼에서 사례 발표자로 나선 서호철 세종공업 연구소장(상무)은 국산화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종공업이 수소를 감지하는 수소센서 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은 2008년. 수소 분야는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 때문에 국가 간 거래나 기술 이전이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초기에 사업에 나선 일본 기업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해왔다. 세종공업은 국산화를 위해 기초 연구개발(R&D)만 4년을 진행했다. 이후 외부 전문기관과 기술 실증을 위한 연구용역 3년, 사업화를 위한 자체 추가 연구 3년 등에 총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자체 개발한 수소센서를 적용할 때까지 여러 차례 시련을 겪기도 했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서 상무는 “부품·소재 국산화는 초기 R&D부터 실증, 사업화까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비용만 계속 드는 상황에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소저장용기(탱크)의 국산화를 추진한 일진복합소재도 사업화까지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었다. 일진복합소재는 2003년부터 수소탱크 개발에 착수했다. 11년 뒤인 2014년 현대차의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전기차인 ‘투싼’에 적용하면서 힘겹게 상업화에 성공했다.

세종공업과 일진복합소재는 그나마 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사로 자체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춰 장기적으로 R&D가 가능했다. 이 덕분에 부품 국산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제는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은 3차 이하 협력사들이다. 주영섭 고려대 공학대학원 석좌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원자재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곳은 사실상 3차 이후 협력사일 가능성이 큰데, 이들은 국산화를 고려할 여력조차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량 섀시(차체)를 생산하는 남양넥스모의 남승종 대표는 “1차 협력사조차 자동차 수요 감소로 수익이 줄어 당장 2, 3년은 돈줄을 바짝 조여야 하는 상황으로 국산화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와 달리 자동차 분야는 부품·소재 국산화율이 90%대에 달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가 적은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국산화에 성공한 ‘제2 세종공업, 일진복합소재’를 선제적으로 육성해 미래차 시대에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정부의 R&D 예산 지원 사업이 복지라는 개념으로 중소기업에 골고루 나눠주기 식으로 이뤄지면 국산화 성공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이 함께 정부 지원을 받고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상생형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용 재료연구소 변형제어연구실장은 “중소기업이 부품·소재 자체 개발에 성공해도 이를 실증할 만한 설비가 마땅히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성과를 확인해볼 수 있는 ‘테스트 라인’을 갖춰줬으면 한다”고 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세종공업#자동차 소재#부품 산업#수소전기차#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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