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제 요청에도…美 “지소미아 파기 재고해야” 불만 표출 지속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9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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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국의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깊은 우려와 실망’을 표시해온 미국이 이를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공개적인 불만 표출을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건드려놓고 입 닫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강경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28일(현지 시간) 국방부 청사에서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과 함께 진행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한일) 양측이 이에 관여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고 지금도 실망한 상태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했지만,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린 한국 정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실망감을 드러낸 셈이다. 한국 외교부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를 불러 “공개적인 우려와 실망의 메시지 발신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이날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미국은 문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깊은 우려와 실망을 표시해왔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처한 심각한 안보 도전을 오해를 반영하는 것” 등 기존의 비판적 발언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소미아 최종 종료일인) 11월 22일 전에 결정을 재고하기를 바란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국무부는 정부가 해리스 대사를 사실상 초치해 “실망감이나 불만 표출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한 언론의 질의에 “사적인 외교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미국은 지소미아를 갱신하지 않는 결정에 대한 우리의 강한 우려와 실망을 문 정부에 표시해왔다”고 답했다. 지소미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금까지 해오던 비판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들도 미국을 상대로 한 정부의 자제 당부 조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의 국가이익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미국에 우려와 실망을 자제하라는 요청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요청은 결과적으로 행정부 내부 분위기만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동맹을 해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조치들이지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정부가 해리스 대사를 부른 것을 놓고 트럼프 행정부 내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비판 자제 요청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한국에는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불만을 쏟아내고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하는 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대해서는 압박 수위를 높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한일 중 어느 한 쪽만이 아니고 양측 모두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내놔야 한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 대해서만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슈라이버 차관보가 이날 CSIS 강연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조치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이 서로에게 취했던 조치들을 제거하고 보다 정상적인 무역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미국이 양국에 특사(envoy)를 보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내놨다.

그러나 국무부 내에서는 이에 앞서 강제징용 판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무부의 한 당국자는 “현 상황의 출발점은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과 이후의 조치”라며 “문 정부가 이에 대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한일 갈등이 근본적으로 풀리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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