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공 넘어가”…靑, 지소미아 재검토 ‘최후통첩’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28일 2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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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日, 백색국가 제외 조치 시행…강한 유감 표명"
협정문 내 재협정 관련 근거 조항 없어…만료 전 회복 여지
靑 "日 경제보복, 한미일 관계 저해…내민 손 잡기를 기대"

일본 정부가 예고한 대로 28일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한일 간 ‘강대강(强對强)’ 대치 국면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재검토 여부는 향후 일본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정부의 협정 종료 판단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면서 일본에 ‘최후 통첩’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지소미아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협상 카드로써의 유효성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일본을 움직일 ‘전략적 카드’로써 얼만큼의 힘을 발휘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자청해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 조치를 시행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김 차장은 “최근 일본이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인 지소미아와 연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초 안보 문제와 수출 규제 조치를 연계시킨 장본인은 바로 일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또 일본이 협정 만료까지 남은 3개월 동안 부당한 조치를 원상 회복할 경우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전날 발언을 언급하며 “공은 일본 측에 넘어가 있다”고 압박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할 것을 촉구한 최후통첩성 메시지로 해석된다.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할 수 밖에 없던 책임이 일본에 있으며, 남은 기간 일본 스스로 보복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협정은 시한에 따라 자동적으로 종료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22일 일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통보했고, 오는 11월23일 자동 종료까지 약 87일이 남아 있다.

청와대는 일본이 우리 정부의 반응을 봐가면서 추가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시나리오별로 맞대응 카드를 제시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김 차장의 이날 브리핑에선 추가 대응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확전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우선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차장이 이날 그동안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고민의 과정을 거듭 강조하고, 일본 책임론에 집중한 것도 정부의 판단에 대한 당위성 차원의 명분을 우선 축적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한 고민의 산물로 해석된다.

앞서 정부 여당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부터 일본의 태도 변화에 따라 이미 내려진 정책적 판단을 원점에서 재검토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 왔다. 비록 통보 시한에 맞춰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지만 충분히 번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이끌어 내기 위한 사전 압박용으로 지소미아를 활용해왔다면, 종료 결정 이후부터는 재검토 가능성을 통해 효용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취함으로써 활용할 카드를 남겨두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소미아 종료 발표 당일 “앞으로 일본이 우리에 대한 부당한 보복적 조치를 철회하고 한일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가 회복될 경우에는 지소미아를 포함한 여러 조치들은 다시 재검토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이 총리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다.

이 총리는 지난 27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주재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지소미아 종료까지 3개월이 남았다”며 “타개책을 찾아 일본 정부가 부당한 조치를 원상 회복하면 지소미아를 재검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더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고, 나아가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촉구한 차원에서 거론한 것으로 해석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 등) 변화된 것들이 있다면 그 때 가서 재검토 해볼 수 있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 차장은 이날 “공은 일본에 넘어 갔다”며 우리 정부 스스로 협정 종료를 자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절차상으로 정부가 비록 협정 종료를 통보한 이후라 하더라도 철회할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치적 결단이 중요한 것이지 회복시킬 의지가 있다면 외교 절차상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미일 외교안보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한일 지소미아 협정문은 종료 후 재개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은 채 작성된 포괄적인 문서”라며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협정을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6년 11월26일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서명한 협정문은 주고받을 군사비밀의 정의·분류·표시·전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협정 종료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 조항인 제21조(발효·개정·기간·종료)에서 외교 경로를 통한 서면 통보 방식의 발효와 종료, 상호 서면 동의에 의한 개정 등에 대한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90일 전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으면 1년씩 연장된다는 내용도 2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첫 논의부터 가서명까지 18일 안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데다, 발효까지 1개월이 안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외교적 상황을 고려해 정교하게 작성할 여유가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 내부에서도 태생적으로 절차상 이러한 한계가 존재하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협정 또는 협정 종료 통보 이후 만료 전 철회 등을 고려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제21조 틀 안에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만일 정부 내에서 협정 만료일(11월23일) 이전에 협정 종료 유지에 대한 재판단이 이뤄질 경우 일본에 종료 결정을 통보했던 절차 대로 종료 철회 의사를 통보하고, 일본이 수용하면 별다른 과정 없이 협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소미아 재협정은 원칙적으로는 원점에서부터 협의를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일본이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꿔 한일 관계가 정상화 국면에 이른다면 양측 합의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정부가 비록 강수를 두기는 했지만 마지막 끈마저 놓기는 어렵다고 보인다”면서 “결국 지소미아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 초석이라는 점에서 영구적으로 종료하기 힘들다는 것이 고민의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두 달 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일본이 자발적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거두고 모든 것을 무역보복 이전의 상황으로 원상복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재협정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정부 역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고 협정 종료를 결정했던 만큼 스스로 번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뉴시스에 “시시각각 변하는 외교 현안과 관련해 속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수출규제 철회 등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재협정을 우리 측에서 먼저 요구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지난 23일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차례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일본은 결국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배제했다”면서 “(지소미아를) 재검토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차장이 이날 “한미는 물론 한미일 공조 필요성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대통령이 언급했듯 일본이 우리가 내민 손을 잡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일말의 가능성은 살려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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