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신고제[횡설수설/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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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스럽습니다. 사날 후에 꼭 드리겠습니다.” “글쎄 언제가 사날이란 말이오? 돈두 다 싫소. 오늘은 방을 내주.”

김유정의 소설 ‘따라지’에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옥신각신하는 장면이다. 돈이 아쉬워 사글세를 들인 집주인은 밀린 방세를 받으려다 결국 실패한다. 사글세는 보증금 없이 미리 6개월이나 1년 치 집세를 내고 매달 공제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모두 가난했던 시절에 널리 쓰였다.

▷요즘도 대학가 원룸 등에는 사글세가 남아 있다. 보증금 없이 1년 치 월세를 미리 내고 대신 한두 달 치를 깎아준다. 최근 월세가 많이 늘어났지만 우리나라의 주택 임대는 전세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세는 해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한때 집값이 안정되고 은행금리가 낮아지면서 전세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서울 강남의 고급 주택은 전세금이 수십억 원이나 되는 곳도 있다.

▷정부 여당이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주택 임대차 계약을 하면 30일 내에 중개인이나 임대인이 보증금과 임대료, 임대기간 등을 관할 시·구청에 신고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신고하거나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해야, 혹은 집주인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해야 임대 정보가 파악된다. 신고가 의무화되면 현재 전체 임대의 약 20%만 파악되는 임대료 등의 정보가 전부 드러나 임차인 보호가 강화되고 임대수입에 대한 과세가 쉬워진다. 지금도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월세 뿐 아니라 전세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하지만 신고 의무가 없어 유명무실하다.

▷전월세 신고제는 ‘전월세 실명제’나 다름없다. 그동안 물밑에 있어 파악하기 어렵던 주택 임대 현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할 당시 며칠 주가가 폭락했고 경제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왔지만 결국은 잘 정착했고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주택은 이미 2006년 매매가 실거래 신고가 도입됐으니 금융실명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전월세 신고제도 밝은 면만 기대하면 안 된다. 집주인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증가에 이어 임대수입까지 드러나니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은퇴하고 월세에 기대 사는 노년층이 불만을 갖거나 임차인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 정부 여당은 임대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 제도를 도입하는 큰 그림을 가진 듯하다. 서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시범 실시를 통해 시장 반응도 살피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전월세 실거래가#전월세 신고제#사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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