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쉴 수 없어” 부부가 교대하며 24시간 영업…워라밸 시대의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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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영업자 중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6명 중 1명은 쉬면서도 일 걱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돼 여가시간이 늘고 있지만 자영업자에게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은 여전히 남의 얘기인 것이다.

26일 한국노동연구원 이승렬 부원장과 손연정 부연구위원의 ‘중·고령 자영업자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원할 때 휴식하는 자영업자 비율은 12.6%로 임금노동자(31.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자영업자가 점심시간, 퇴근 후, 주말, 휴가 등 일하지 않을 때 업무를 걱정하는 비율은 17.9%로 임금노동자(8.2%)의 두 배를 웃돌았다. 퇴근을 해도 너무 피곤해 집안일을 못 한다는 자영업자도 17.1%였다. 연구팀은 “자영업자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임금노동자보다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40.2%는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45.4%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연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전국의 자영업자 1만707명, 근로자 3만7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근로환경조사를 토대로 이뤄졌다. 동아일보는 워라밸 시대의 ‘그늘’에 놓인 사람들의 실태를 진단해봤다.》

“밤에 별일 없었지?”

13일 오전 11시. ‘끽’ 하고 열린 유리문이 ‘쾅’ 닫히자 정모 사장(61)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평(66㎡) 남짓 되는 마트 계산대에 앉아 있던 아내 안모 씨(61)가 “20만 원 정도 팔았어”라고 답했다. 아내가 조그만 부엌에서 두부찌개를 끓였다. 낮 12시부터 부부는 파란색 간이용 탁자 위에 음식을 놓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했다. 부부가 하루 중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 유일한 시간이다.

“시장은 내일 갈 거지? 저녁 챙겨먹어. 난 간다.”

식기를 정리하자 오후 1시가 됐고, 아내가 가게 문을 나섰다.

“얼른 가 쉬어.” 남편의 말을 뒤로한 채 안 씨는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10시간 후인 밤 11시 30분에 그는 또 마트에 나와야 한다. 포도, 수박이 진열된 좌판 뒤 마트 유리창엔 ‘24시간 운영’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 24시간 영업의 늪


2010년 7월 정 사장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A마트를 차렸다. 30년 동안 밭떼기(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는 일) 거래를 했던 그는 2009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몽땅 잃다시피 했다. 그 후 동생들 도움으로 시작한 게 이 점포다.

“야근 책임지고 할 수 있는데 저 알바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중국인 여대생이 찾아와 야간 근무를 자처했다. 종일 영업할 생각이 없었지만 정 사장은 학생 부탁으로 24시간 영업을 결심했다.

“밤에도 돌아가는 인근 봉제공장도 많고 좌판의 상품을 들였다 내놨다 하기도 힘드니 밤새 영업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2명의 아르바이트생과 정 사장이 3교대로 번갈아가며 24시간 운영을 했다. 장사는 잘됐다. 하루 매출이 300만~350만 원을 오갔다. 명절이면 선물세트와 과일이 잘 팔려 하루 매출 1200만 원을 찍은 날도 있었다. 정 사장은 “아들 장가갈 때 전셋집 하나는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낙후된 동네를 떠나는 주민이 늘어난 데다 동대문시장 침체 여파로 주요 고객이었던 봉제공장 관계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게다가 3년 전 80m 떨어진 곳에 편의점이 생기자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가 편의점보다 소주 가격이 더 싼 데도 젊은 사람들은 다 거기로 가요.”

일하는 알바생을 내보내고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때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7월 자영업자 567만5000명 중 415만5000명이 정 사장처럼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다.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혼자 일하거나 혹은 가족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13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 동안 점포에서 물건을 사간 사람은 총 23명. 소주 1병, 아이스크림 1개 등 소액 구매가 많아 판매액은 6만4000원 정도에 그쳤다. 이렇게 부부가 꼬박 24시간 일해 올리는 매출은 월 3000만 원 정도다. 제품 원가와 가게 월세, 집세, 전기료 등을 뺀 순이익은 불과 250만~300만 원이다.

“이제 하루 매출은 100만 원을 간신히 넘을 뿐이에요. 하루 문 닫고 쉴 수도 있지만 이젠 닫으면 손해예요. 완전 창살 없는 감옥이라니까.” 정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 부부에게 없는 3가지… 휴가, 건강, 노후 준비

20일 점심에도 부부는 교대를 준비했다. 매일 가게에 매달려 있는 부부의 주당 근로시간이 80시간을 훨쩍 넘는다. 부부는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다.

정 사장은 얼마 전 안 씨가 “아유, 내가 왜 일요일도 없는 사람한테 같이 살자고 했는지…”라며 한숨을 쉬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정 사장은 “젊을 적엔 휴가도 갔지만 이젠 사람 둘 형편도 못 되고 기름값 아까워서 놀러가지도 못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의 유일한 취미는 유튜브 시청이다. 손님이 뜸할 때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정 사장은 “산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안 간 지 6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이걸 그만둘 수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정 사장은 한쪽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다. 서른한 살 때 의류 재단 일을 하다 당한 절단 사고 탓이다. 손이 불편하니 막노동 일자리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밤낮이 바뀐 안 씨도 지난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대상포진을 앓았다. 치료비로 하루 매출보다 많은 150만 원을 썼다.

최근엔 가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새 건물주로부터 마트를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건물주는 “보증금 1000만 원을 줄 테니 나가 달라”고 했지만 부부는 “시설비용으로 8000만 원이 들었다. 나갈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으로 한 달 7만8000원을 내는 게 부부의 유일한 노후 대비다.

“왔어?”

이날도 밤 11시 30분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지춤을 추켜올린 정 사장은 가게 안을 쓱 둘러보고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고 말했다. 밤 10시에 잠에서 깼다는 안 씨는 그제야 저녁을 먹었다. 어두운 골목길로 향하는 정 사장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보였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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