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망’ 반응 이후 2년간 휘청거린 美日 관계 [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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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미국으로부터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한 번 받았다. 아베 총리가 취임 1주년인 2013년 12월 26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했을 때였다. 당일 주일 미국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소중한 동맹이자 친구인 일본의 지도자가 주변국과의 갈등을 악화시킬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실망했다”는 성명을 냈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다음 날 실망 발표를 반복하며 정부 차원의 불만을 공식적으로 나타냈다.

일본 정부는 당혹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축적돼 온 (미일) 관계가 있다. 참배 취지를 끈질기게 설명하면 (미국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기시 노부오(岸信夫) 당시 외무성 부대신 등을 잇달아 미국으로 보냈지만 그들은 각자 파트너로부터 오히려 훈계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 행정부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외교를 추진했다. 아시아 갈등을 일으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움직임에 민감했고, 위안부 문제도 ‘인권 문제’로 엄중하게 대했다. 미 정부는 사전에 아베 총리에게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자제하라”고 요구했지만 무시당하자 일본에 대한 태도가 싸늘하게 식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4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이었다. 일본이 국빈으로 초청했는데 미 정부는 1박만 하겠다며 날짜 조율부터 삐걱거렸다. 최종적으로는 2박이 됐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방일 기간 내내 일본과 거리를 뒀다. 그는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따로 오찬을 했고, 메이지신궁 방문 때 아베 총리의 ‘동행’ 제안을 거절했다. 국빈 방문이었지만 미셸 오바마 여사는 동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 처지에서 보면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동아시아 긴장 완화’ 요구에 시달렸다. 아베 총리의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 정상은 과거사 문제, 영토 갈등을 이유로 정상회담을 거부했다. 아베 총리는 수차례 “어려울 때일수록 정상 간 만나 대화를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한 발언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해석이었다. 아베 총리가 지지층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2015년 12월 한국과 위안부 합의에 나선 것도 미국의 압박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가 마무리될 때까지 내내 미일 관계가 안 좋았을까. 그건 아니었다. 아베 총리는 이후 두 번 다시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았고, 과거사를 부정하는 거친 발언도 삼갔다. 중국의 부상(浮上)에 맞서기 위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등 미국과 방위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이후인 2016년 5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했고, 그해 12월 아베 총리가 미국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를 답방하면서 오바마-아베 정부는 신(新)밀월 관계가 다시 시작됐다. 미국이 ‘실망’, ‘강한 우려’를 밝힌 이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의 과정도 모두 미국과의 관계엔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 같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야스쿠니신사#미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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