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 마을’ 송도의 역사를 아시나요?… 인천도시역사관서 특별 전시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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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시 변모 과정 3부로 소개, 송도의 과거-현재-미래 한눈에

20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인천도시역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동막어촌계 현판이 전시된 부스에서는 어민들이 과거에 송도갯벌에서 수산물을 잡을 때 쓰던 어구가 보인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20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인천도시역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동막어촌계 현판이 전시된 부스에서는 어민들이 과거에 송도갯벌에서 수산물을 잡을 때 쓰던 어구가 보인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 연수구에는 ‘송도(松島)’라는 이름이 붙는 2개의 도시가 있다. 과거 해수욕장이 운영되던 송도유원지 일대와 바다를 매립해 조성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다. 청량산 자락 아래 송도유원지 주변에는 주로 영업을 시작한 지 오래된 음식점과 상업시설 등이 즐비하지만 송도국제도시에는 대기업이 입주한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두 도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시민들이 이들 도시를 ‘옛 송도’와 ‘신송도’로 나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도시의 탄생 과정과 역사를 다룬 특별한 전시회가 지난달 10일부터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도시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송도일대기―욕망, 섬을 만들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의 욕망이 도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 착안했다.

‘첫 번째 욕망―이름을 가져오다’가 첫 전시의 주제다. 인천항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연 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미야기현에 있는 명승지이자 러일전쟁에 투입된 군함의 이름인 마쓰시마(松島)라는 단어를 인천과 부산, 목포, 포항 등 일본인 거주지에 붙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송도유원지 일대는 조선시대까지 ‘옥골’이나 ‘능허대(凌虛臺)’ 등으로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송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음을 상기시킨다.

다음 전시공간의 주제는 ‘두 번째 욕망―관광 인천을 향하여’다. 개항한 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송도유원지 일대에는 행락지가 들어서며 관광이라는 소비문화가 탄생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1937년 해수풀장과 아동유희장 등과 같은 위락시설을 갖춘 송도유원지가 문을 연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뒤 광복을 거쳐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군인 휴양지로 사용되기도 했던 송도유원지는 1963년 경인지역 사업가들이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를 설립해 재개발사업에 들어가면서 현대적 시설을 갖춘 종합휴양지로 도약한다. 당시 송도유원지 입구에 있던 종합매표소와 입장권, 종합휴양업시설을 알리는 동판, 유원지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 포스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1960년대 송도유원지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송도유원지는 2011년 문을 닫았다.

‘세 번째 욕망―공간을 사유화하다’가 마지막 전시공간이다. 송도유원지 일대 주민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와 갯벌을 1994년부터 매립해 조성하고 있는 송도국제도시(면적 약 53km²)의 역사가 펼쳐진다. 특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2003년부터 도시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송도국제도시의 현재 인구는 14만9528명에 이른다. 2022년까지 21조5000억여 원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이 마무리되면 25만6000여 명이 거주하게 되는 송도국제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은 “바다와 함께 살아가던 해안가 마을에 유원지가 들어서고, 갯벌을 메워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며 붙은 송도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전시회”라며 “다음 전시회는 송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10월 6일까지 계속되며 월요일은 쉰다. 무료.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송도#인천도시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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