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꾼 음악… 80년 재즈사를 돌아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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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루노트 레코드’에 출연한 색소폰 거장 웨인 쇼터.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블루노트 레코드’에 출연한 색소폰 거장 웨인 쇼터.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재즈를 일컬어 자유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사회적 자유가 그렇듯 음악적 자유 역시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연주자와 관계자들의 피, 땀, 눈물이 인류 예술사에 가장 자유로운 음악 형식을 일궈냈다.

미국의 블루노트 레코드, 독일의 ECM 레코드가 올해 각각 설립 80주년과 50주년을 맞았다. 세계 재즈 역사를 주도한 대표적인 명가다. 이를 기념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15일 국내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블루노트 레코드’(감독 소피 후버)는 음반사와 미국 재즈의 역사를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처럼 담아냈다. 86분짜리이지만 인터뷰, 사진, 연주 장면을 오가는 짜임새 있는 편집으로 밀도를 높였다.

왼쪽부터 블루노트 설립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란시스 울프, ECM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
왼쪽부터 블루노트 설립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란시스 울프, ECM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
블루노트 레코드는 독일에서 이주한 재즈 마니아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란시스 울프가 1939년 미국 뉴욕에 설립했다. 재즈 마니아였지만 전문 지식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블루노트만의 색깔과 매력을 만들었다. 연주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고 제작에 많은 재량권을 줬던 것이다. 특히 1950, 60년대 블루노트가 발표한 존 콜트레인, 아트 블레이키, 리 모건 등의 음반은 재즈 역사의 빛나는 등뼈를 이룬다. 울프의 절묘한 사진과 리드 마일스의 쿨한 앨범 디자인, 루디 반 겔더의 음향 조율은 블루노트만의 색채를 만들었다.

연주자 나나 바스콘셀로스, 팻 메스니 등과 함께 작업 중인 ECM 대표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왼쪽에서 두 번째). 씨앤엘뮤직 제공
연주자 나나 바스콘셀로스, 팻 메스니 등과 함께 작업 중인 ECM 대표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왼쪽에서 두 번째). 씨앤엘뮤직 제공
영화는 루 도널드슨(93), 웨인 쇼터(86), 허비 행콕(79)의 생생한 인터뷰로 블루노트의 의미를 짚는다. 텔로니어스 멍크, 마일스 데이비스, 클리퍼드 브라운 등의 당시 연주 녹음 미공개분, 역사적 앨범 표지의 원본 사진이 팬들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음악과 시대정신의 관계를 짚고, 블루노트와 재즈가 힙합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는 데서 더 나아간 것이 영화의 미덕이다. 21세기 블루노트를 이끈 새 물결인 노라 존스, 로버트 글래스퍼는 물론 래퍼 켄드릭 라마의 프로듀서 테러스 마틴도 등장한다. 글래스퍼, 앰브로즈 아킨무시리 같은 차세대 연주자가 쇼터, 행콕과 함께 하는 농밀한 즉흥 연주 장면도 압권이다.

블루노트의 새 시대를 대표한 재즈 보컬 노라 존스.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루노트의 새 시대를 대표한 재즈 보컬 노라 존스.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루노트는 80주년을 기념하며 프레디 허버드, 덱스터 고든, 존 스코필드 등의 옛 음반을 LP레코드로 재발매해 내놓고 있다.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멜론 등 디지털 음원 플랫폼에서도 특집 선곡 목록을 들어볼 수 있다.

ECM 반세기를 기념하는 행사도 세계 각지에서 열린다. 빅 이어즈(미국), 재즈어헤드(독일), 몬트리얼 재즈(캐나다) 등 세계적 음악 축제가 ECM 특별 섹션을 마련했고, 11월에는 뉴욕 ‘재즈 앳 링컨센터’, 영국 런던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이벤트를 연다.

10월 중순에는 서울에서 ECM 5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린다. 2013년 전시회 때 서울을 찾았던 ECM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76)는 참석이 어려울 듯하다. 블루노트와 반대로 음반 제작부터 표지 선정까지 손수 주도한, 독재자 기질의 이 기인은 최근 건강 문제로 활동을 쉬고 있다.

블루노트 레코드 대표 명반들 표지.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루노트 레코드 대표 명반들 표지.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월간 ‘재즈피플’의 김광현 편집장은 “블루노트가 미국 흑인 연주자 중심으로 재즈의 진수를 천착해 들려줘 애호가들의 존경을 받아왔다면, ECM은 덜 알려진 유럽 재즈 음악가와 새로운 사조를 세계에 소개한 독일제 명차 같은 음반사”라며 “이 기회에 아트 블레이키 앤드 더 재즈 메신저스의 ‘Moanin′’(블루노트·1959년), 얀 가르바레크의 ‘Officium’(ECM·1994년) 같은 명반들을 들어보면 재즈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블루노트#ecm#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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