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잘 살게 해주는 기업’ 에서 ‘착한 기업시민’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9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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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근 포스코 기업시민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곽수근 포스코 기업시민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기업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길을 꿋꿋하게 가보겠다는 겁니다.”

포스코는 지난달 25일 3개 실천원칙과 9개 행동준거로 구성된 기업시민헌장을 공개했다. 이 헌장을 만드는 것을 주도한 곽수근 포스코 기업시민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최근 기자와 만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바뀌는 게 쉽지만은 않으니 (포스코가 바뀌도록) ‘질타해 달라’고 스스로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기업의 존재가치를 ‘이윤’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취임 이후 1년 동안 △파트너와 함께 강건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더 나은 사회 구현에 앞장서며 △임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내용의 헌장을 만들어 주주와 국민들 앞에서 이를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곽 위원장은 기업시민헌장 선포로 이제 포스코는 회사 안팎에서 경영 활동을 할 때 “헌장에 부합하느냐”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직원과 주주, 국민들이 포스코의 경영활동이 스스로 내건 기업시민으로서의 가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질문할 때 경영진은 이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곽 위원장은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강건한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원칙이 헌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가 주요 사업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협력업체 등과 동반성장을 이룩해 경제·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50년 전 대한민국은 ‘잘 살게 해주는 기업’이면 충분했지만 현재의 기업은 바다에 뜬 배와 같아서 이해관계자들의 지원 없이 혼자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포스코가 말하는 기업시민은 결국 ‘착한’ 기업시민”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업시민’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낯설다. 기업시민이 지향하는 바를 간략히 얘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50년 전 대한민국에서 기업은 잘 살게 하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먹고 살기 어렵다 보니 가장 큰 캐치프레이즈 역시 ‘잘살아보세’였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기업이 밥만 잘 먹여주면 될까. 밥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을 둘러싼 지역사회나 일반사회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그것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협력사, 소비자,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어야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서 그 기업에 취업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다른 물건이 아닌 그 회사의 물건을 선택하고 싶어 하게 해야 한다. 그런 선택이 그 기업을 지원할 수 있게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얘기하는 ‘경제적 가치로서의 기업’과 ‘사회적 가치로서의 기업’은 배반적 개념이 아닌 함께 움직이는 선순환 개념이다.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기업이 되는 것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중요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라는 지표를 만들어 점수가 되는 곳에만 투자하는 시민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흐름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의 ‘우리만 잘하면 된다’라는 자세로는 곤란하다. 기업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 사회 이해관계자들의 지원 없이 혼자 성장할 수 없다. 옛날에는 기업을 따로 분리했다면 이제는 생태계 속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코는 많은 중요한 일을 해왔다. 포스코는 법을 어기지도 않고 꾸준히 흑자를 내면서도 교육시설이나 축구팀 등을 만들며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본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아직 채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 체계와 이념을 갖고 기업시민 포스코를 세상에 선언한 것이다. 포스코 혼자 힘으로는 바꿔지지 않기에 ”우리를 지켜봐 달라“, ”질타해달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이 우리 기업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다.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기업이 앞장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시민’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를 중심으로 큰 프로젝트가 있었다. 포스코의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프로젝트로 만든 것이다. 나는 포스코의 기업문화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다른 교수님들도 여러 분이 참여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과거 포스코의 가치체계가 제철보국으로 시작해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특별히 제철보국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 앞으로 다가 올 50년을 보며 뽑은 새 키워드가 기업시민이었다.

그런 만큼 기업시민 개념이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몇 년간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것은 다른 기업이 쉽게 따라할 성격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업시민헌장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양만 좋게 잡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기업시민헌장을 내놓은 포스코란 기업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

“나는 포스코가 깨끗한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포스코의 강점은 건강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각각의 기업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는데 포스코는 ‘깨끗하고 건강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밖에 포스코는 공기업적 성격도 있고 철강이라는 제품이 갖는 거친 이미지도 있다. 조직 자체가 경직되고 과거엔 독점적인 사업이어서 고객 배려가 약하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과거 70년대에 직장을 다닐 때 제조업이 겪는 가장 어려운 것이 플라스틱 사출이었다. 사출을 위해 금형을 파는데 금형을 맡기면 칼로 깎아서 써야 했다. 금형 실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산 금형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후 내가 한 대기업 공장에 가서 지금은 왜 그런 일이 없는가라고 질문했더니 ‘포스코가 좋은 철을 만들어줘서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포스코가 없다면 우리나라의 현재도 없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성장한 것은 포스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포스코는 그 ‘큰 형님’의 역할만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과제로 도전해야 한다. 믿음직한 기업이 ‘스마트하고’, ‘모범적인’ 기업으로 컸으면 하는 것이 시민들의 바람이다. 이렇듯 기업시민헌장은 많은 이들에게 물었을 때 나오는 포스코의 모습으로 공통분모를 찾은 것이다.

―동반성장, 협업이라는 가치는 결국 포스코가 가져갈 정해진 이윤을 쪼개서 주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포스코가 경제적 가치만을 중심으로 협력사를 선택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상관없이 가격과 품질만 볼 것이다. 그런데 기업이 어떤 문화를 갖는지가 이제는 중요해진 상황이다. 기업을 하는 이유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가 됐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주는 것, 그리고 그런 판단 근거가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요소가 돼야한다. 그런 회사와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면 경제적 가치도 자연히 좋아질 것이다. 그런 의지가 있는 기업의 성장발전이 높을 것이고 그 혜택이 다시 우리 회사로 돌아올 것이다.

예를 들어 퇴직자들이 협력사에 가서 도움을 준다거나 포스코의 교육 프로그램 교육을 중소기업과 공유해 협력하는 것만으로 그 중소기업에는 좋은 인재가 모일 것이다. 결국 일자리 문제도 해결되고 포스코에게도 혜택은 돌아온다.

내가 이해하기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헌장 실천원칙 첫 번째 항목에 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 경제적 가치로 귀결된다는 것을 포스코가 증명해야 한다.

포스코의 본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회사가 임직원을 행복하게 한다거나 저출산을 해결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지 않나. 사업이 잘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즈니스 위드 포스코’ 측면에서 고객과의 관계가 선순환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신소재 쪽에 포스코의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더 많은 파트너를 만들어 혼자가지 않으면서 세상과 함께 신소재 세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기존 사업의 경우도 품질 낮은 철판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포스코의 유일한 승리 방법은 다른 나라가 못 만드는 고부가가치의 특수한 철강제품 생산이다. 그것이 포스코가 할 변화와 혁신이다.

또 하나는 철강 이후의 세계다. 포스코는 철강회사지만 언젠가 철의 수요가 낮아져 철강산업의 문을 닫는 시대가 왔을 때를 대비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역시 포스코 혼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좋은 파트너와 함께 역량을 함께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포스코가 잘 하는 것은 연구다. 포스텍을 만들고 기초기술에 대한 서포트가 가능했기에 이렇게 성장해왔다고 본다. 앞으로 새 사업영역을 찾을 때도 기존 사업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분야로 연계해야 한다.

―헌장에 비춰봤을 때 현재 포스코 수준은 어느 정도로 보는지.

“헌장의 실천원칙 두 번째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세 번째도 그리 나쁘지 않지만 바뀔 점은 많다고 본다. 열린 조직이 돼야 하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코는 공채 중심으로 뽑아서 집단 교육을 시켜 머릿속에 포스코 맨이라는 프레임을 찍어서 넣어줘 왔다. 그래서 일사분란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작용도 있다. 그 성공신화가 포스코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배고픈 과거와는 다르고 회사에 들어오는 사람도 전혀 다른 밀레니얼 세대다. 같은 공간에서 살지만 새로운 세대가 기존 문화를 밀어내는 속도는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수 백 달러 세대와 3만 달러 세대는 다른 사람이다. 조직에 들어오면 새로 들어온 물과 기존 물과 교체되는 흐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젊은 사람들이 좀 더 창의적인 사람들이 들어와 생각을 펼 수 있도록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 중 제일 어려운 장벽이 리더들이다. 리더가 바뀌는 운동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런 것이 헌장 세 번째와 관련된 것이다. 헌장 중 첫 번째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가시화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 사업발굴을 하는 것인가.

”늘 하던 일이다. 기업시민헌장은 기존에 늘 하던 일을 가치체계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한 것일 뿐이다. 즉, 룰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원칙에 맞게 행동하도록 규칙을 만든 것일 뿐이다.

기업시민헌장은 한번 선전하고 말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이건데 이게 맞는 거냐’를 판단하고 반론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포스코의 시간과 노력이 어디에 들어가고 불필요한 일은 무엇인지도 봐야 한다. 아직도 회사에는 단순히 윗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 있는 사람이 많다. 가치창출과 상관없는 일은 버려야 한다.

―포스코 환경이슈가 있는데.

“이번에 용광로를 수리할 때 가스 나온다고 문제시했더라. 나는 사실 오염물질 배출문제보다 에너지나 화석연료 소비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것이다. 이는 태생적인 문제로 본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기업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같은 철강기업 내에서 평가하고 과거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여러 지표를 만들어 지난해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하던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스나 전력소비는 어떻게 줄였는지 등을 성과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일 것이다.

초기에 비용은 들겠지만 장기 기업가치에 도움 될 수 있다. 사실 당장 올해 이익을 늘리는 건 쉽다. 광고 줄이고, 교육하지 않고, 기부도 하지 않으면 된다. 불필요한 걸 줄이면 이익은 난다. 하지만 그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포스코는 연구개발(R&D)을 잘 해왔다. 예전에 물먹는 하마같이 돈이 들어간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 하다 그만두지 않고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기업시민 이념을 체화시키려면 엄청난 고통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헌장 선포는 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던 대로 하지 않는 것. 하지만 이렇게 해야 발전한다. 똑같이 해서 다른 나라를 이길 수 없듯 다르게 해야 한다. 기업은 사랑받도록 노력하고 사회는 기업을 사랑해야한다.

미래는 기업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외교관이 외교하던 시대도 지났다. 동종 업계끼리 기업들이 각자 외교하는 시대다. 기업을 잘 운영하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잘하는 기업이 잘 하도록 세상이 격려해야 우리의 아이들이 기업인이 되는 꿈을 키울 수 있다.

사실 기업시민이라는 말 앞에 한 단어가 빠져있다. ‘착한’ 기업시민이다. 포스코를 평가할 때 가장 좋은 평가는 착한 기업이다. ‘일하고 싶다’, ‘함께하고 싶다’, ‘잘되기 바라는 기업이다’라고 우리가 바꿔가야 한다. 그 일을 포스코가 시작한다. 그래서 기업시민은 ‘두발로 똑바로 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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