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文대통령, ‘반일’ 대신 ‘극일’에 방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5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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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내놓은 대일(對日) 메시지의 핵심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 배제 결정 직후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밝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의 연장선상이다.

감정적인 ‘반일(反日)’ 보다는 경제 구조 개선 등을 통한 ‘극일(克日)’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또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맞대응으로 한일 갈등의 확전에 나서기 보다는 계속해서 외교적 해법 마련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해”

문 대통령은 이날 “지금 우리는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며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 산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세계적 정보통신(IT) 강국이 되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74년간의 경제 발전의 성과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로 인한 타격과 같은 피해를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업 구조 개편, 부품·소재 국산화 등 ‘자강(自强)’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 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며 “통합된 국민의 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도전은 우리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다며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혔다.

● 직접적인 日 비판은 자제

문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와 수출 보복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도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갈등을 촉발한 강제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비전을 제시하며 우회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문 대통령은 “책임 있는 경제 강국으로 자유무역의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며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하여 이웃 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정면으로 일본을 겨냥하는 ‘네거티브’ 대응보다는 일본과 차별화 되는 우리의 미래지향적 방향을 경축사에 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 “대화·협력 택한다면 기꺼이 손 잡을 것”

문 대통령은 한일 갈등의 외교적 해결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고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2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기조를 이날도 이어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한 수위 조절에 나서면서 향후 청와대의 대응도 비슷한 기조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축사는 한일 갈등의 확전 여부를 결정짓는 첫 번째 분수령으로 꼽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먼저 공세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일본의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지켜본 뒤 대응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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