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공항점거 시위[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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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20세기 중반 이후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도시로 성장했지만 공항은 격에 맞지 않았다. 주룽반도에 있는 카이탁 국제공항은 주택가와 인접해 여객기가 아파트 건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뜨고 내려야 했다. 그러다 반환 이듬해인 1998년 7월 란터우섬에 첵랍콕 신공항이 개항했다. 현대식 시설의 이 공항은 하루 1100여 편의 항공기가 세계 220개 도시와 연결되는 허브 공항으로 자리 잡으며 홍콩 비상(飛上)의 원동력이 됐다. 이 공항이 시위대에 점거돼 10시간가량 ‘셧다운’(일시 운항 중단)되자 홍콩의 운명을 흔드는 서막은 아닌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9일부터 사흘간 공항에서 평화적인 연좌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11일 경찰이 침사추이의 시위 현장에서 발사한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맞은 여성이 실명 위기에 빠지자 12일 오후 시위대 1만여 명이 공항을 점거했고 13일 오후에도 공항 일부를 점거했다.

▷공항은 쿠데타 같은 국가비상사태, 내란, 전쟁 등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점거되는 국가 기간시설이다. 이번처럼 민간인들이 정치적 시위를 벌이며 공항을 점거한 것은 유례가 드물다. 허브 도시 홍콩의 관문을 점거함으로써 국제사회와 외국인 여행객에게 홍콩 사태를 알리려는 목적일 거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기간에 중국 외 19개국 주요 언론에 지지 요청 광고를 게재한 데 이어 세계 여론에 직접 호소하려는 몸부림이다. ‘골리앗 중국’에 맞선 홍콩 시위는 국제 여론의 지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환법 반대에서 시작된 홍콩 시위는 약 10주째 이어지면서 시위와 대응 양상 모두 바뀌고 있다. 중국 당국은 시위를 ‘색깔 혁명’을 넘어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혔다. 이달 초 개막한 중국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톈안먼 사태 이후 30년 만에 무력진압 결정이 내려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 관영 언론이 잇따라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톈안먼 사태 당시 런민일보의 강경한 사설이 유혈 진압의 신호탄이 된 것 같은 불길한 징조로 읽힌다. 시위대도 촛불·우산 대신 화염병과 벽돌을 던지며 저항이 격렬해지고 있다.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보통선거’나 독립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이 무력 진압에 나서면 홍콩은 아시아 금융 허브,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거점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지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질 우려가 크다. 무력 진압은 경제대국으로 몸집은 커졌지만 전 근대적 권위주의에 머물러 있는 중국 체제의 속성과 한계를 재확인시켜 주며 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홍콩시위#공항점거 시위#쿠데타#중국 무력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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