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유적지 영어 해설 턱없이 부족 …외국인 관광객 “몇몇 해설 엉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3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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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물건이지?”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이곳을 찾은 말레이시아 여성 하니 씨(27)는 영어로 ‘Stick’이라고 설명돼 있는 전시물을 보고 옆에 있던 남편(27)에게 물었다. Stick이란 설명으로는 전시물의 정체를 알 수 없던 남편 역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들 부부가 궁금해 한 전시물 앞에는 ‘Stick’이라는 표기와 함께 ‘일제강점기 태형 집행시 사용됐던 형벌 도구’라는 설명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태형(笞刑)은 죄수의 볼기를 작은 몽둥이로 치던 형벌이다. 일제강점기 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데 쓰인 도구를 ‘막대기’ 정도로 설명해 놓은 것이다.

수감돼 있던 독립운동가를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머리에 씌웠던 ‘용수’는 영어로 “Head cover used by a Prisoner(수형자가 사용한 머리덮개)”로 설명돼 있었다. 독립운동가를 재소자(Prisoner)로 표현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전시 주제와 전시물의 이름만 영어로 번역해 놓았을 뿐 전시물에 대한 영어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운동가들의 옥중생활을 담은 기록은 ‘기록으로 보는 옥중생활’이라는 전시 주제만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설명돼 있고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옥중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한 외국어 설명은 없었다.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화면에는 형무소 전체 구조를 보여주는 축소 모형과 옥사, 사형장, 유관순 열사 지하 감옥 등에 대한 한국어 설명이 있었지만 외국어 해설은 없었다. 전시관 복도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3·1운동 100주년 관련 동영상에도 한국어 자막만 나오고 있었다.

서대문형문소를 직접 찾았던 외국인들은 여행사이트에 관람 후기를 올려 영어 해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올해 5월 한국을 방문한 한 스웨덴 남성은 “각각의 전시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영어) 설명이 부족해 속상했다”며 “몇몇 해설은 구글 번역기를 돌린 줄 알았다”고 글을 남겼다. ‘한일 관계에서 한국에게 유리한 것은 외국어 해설을 포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일부러 뺀 것 아닐까’라는 후기도 있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 해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방문 한달 전에 전화로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 측은 “영어 해설사가 많지 않아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외국인을 위한 영어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 중구 남산에 조성된 ‘기억의 터’도 4곳으로 나눠진 각 구역 명칭이 한글로만 소개돼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역시 비석에 한글로만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올해 2월 이 곳을 찾은 미국인 스티브 씨(43)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 알고 싶어 왔는데 막상 그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일본군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만든 ‘난징대학살기념관’의 영상 자막은 물론 모든 전시물에 대해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비석에는 난징대학살 피해자 수가 30만 명에 이른다는 설명이 10개 나라 언어로 적혀 있다.

신아형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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