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서 피웠는데 왜 과태료 물어야 해요?” 금연구역 단속 현장에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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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한테 피해 안 주려고 구석에서 폈는데 왜 과태료를 물어야 해요?”

1일 오후 7시경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광장. 흡연구역을 벗어나 전자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한 중년 남성이 서초구 보건소 공무원 2명에게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단속 공무원이 “이 곳에서는 서초구 조례에 따라 흡연하면 5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안내했지만 남성은 신분을 밝히길 거부했다. 남성은 과태료 고지서를 끊는 공무원에게 “(담배) 피지 말라고 이야기라도 해 주던가 다짜고짜 사진부터 찍는 게 어딨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며 자리를 떴다. 단속에 나선 서초구 보건소 건강정책과 금연관리팀 이영숙 주임(58·여)은 “그래도 욕설은 안 하고 하소연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라고 웃음을 지었다.

금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금연구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올 5월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이하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건축물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건물 내 실내흡연실도 폐쇄할 계획이다.

그러나 흡연단속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태료 단속에 대한 순응도가 매우 낮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본보는 1일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서초구 보건소 직원들과 함께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의 금연거리 단속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두 시간 동안 5명의 흡연자가 적발됐지만 순순히 과태료를 내는 이는 드물었다.

오토바이가 주차된 금연광장 구석에서 담배를 피던 미성년자 커플은 단속원이 다가가자 화단 뒤로 재빨리 담배를 던졌다. “신분증 제시해 달라”는 단속원의 말에 커플은 “미성년잔데요”라고 말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미성년자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말에 마지못해 자신들의 휴대폰 번호를 불러줬다. 이들은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시행령에 따라 과태료가 50% 감면됐다.

“여기는 실외인 줄 알았는데요.” 필로티(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 구조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여성은 “이 곳이 왜 흡연구역이냐”며 단속원에게 따져 물었다. 3면이 뚫려 있어 실외로 착각하기 쉽지만, 필로티 공간도 건물 내부로 보기 때문에 엄연한 금연구역이다.

한 명은 필로티 건물에서, 다른 한 명은 건물과 맞닿아 있는 주차장에서 함께 담배를 피울 경우는 어떨까. 원칙대로면 필로티 건물의 흡연자에게만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 주임은 “실제 단속현장에서 한 명만 단속하면 강하게 항의가 들어올 여지가 있어 쉽게 단속하지 못할 것 같다”며 “현장 단속을 하다 보면 애매모호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나날이 증가하는 금연구역에 비해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소속인 현장 단속원의 수가 적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 금연구역은 2016년 24만4582곳에서 2017년 26만5113곳, 2018년 28만2641곳으로 늘었지만 단속 공무원들의 수는 2016년 121명, 2017년 129명에서 2018년 113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 신규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연금 지급을 중지하는 내용으로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되면서 전직 경찰 출신자 등이 많은 시간선택제 단속 요원들이 연금을 위해 대거 퇴직했다”며 “단속 공무원들을 단계적으로 확충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사지원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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