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美에 한일 중재 요청 안 해…요청하면 청구서 날아와”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12일 1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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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대급부 요구 뻔해…도움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 돼"
"65년 협정 존중, 대법원은 개인청구권 확인한 것 뿐이라고 설명"
"1882년 조미수호조약 실패 언급…"중재 요청했다 거절당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미국 방문 기간 동안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12일 밝혔다.

김 차장은 이날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일 갈등 상황에 대한 중재를 요청하러 미국에 갔다는 식으로 국내 언론에는 보도가 됐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제가 미국에 가서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면 청구서가 날아오고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 뻔한데, 제가 왜 중재를 요청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제가 (미국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 그것(중재)을 요청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한일 갈등이 본격화 하던 지난달 12일 3박4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당시 김 차장의 방미를 두고 미국의 중재를 설득하려는 행보라는 분석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김 차장은 “미국을 방문한 목적 가운데 첫번째는 내(한국) 입장을 객관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었다”며 “우리나라에는 삼권분립이라는 게 있고, 대법원 판례가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는 게 아니다. 우린 이것을 존중한다(고 미국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선 아직도 (개인) 청구권이 남아있다는 것을 대법원 판례에서 확인한 것 뿐이라는 것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김 차장은 대표적 불평등 조약으로 평가받는 1882년 미국과 체결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사례도 이번에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일본과 조선이 문제가 있으면 미국이 조정을 해주겠다는 ‘거중조정’의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조선이 나라 구실을 한다는 전제 아래 이 조약을 맺었고, 조선이 약하기 때문에 미국이 조정을 안 해도 된다’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구한말 당시 미국에 중재 요청을 했었지만 결국 미국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은 미국에 대한 필리핀 지배권을 확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서로에 대한 식민통치권을 눈감아 줬을 뿐 결과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냉철한 국제사회 분위기 속에서 중재를 섣불리 요청했다가는 과거 근현대사의 아픔을 반복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할 이유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김 차장은 “중재라는 것은 둘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미국으로부터) 청구서도 들어올 것이고, 과거에 우리가 중재 요청한 다음에 거절 당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만약 한미일 공조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장한 일본 위주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지(관여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그런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중재라는 말은 안 했고, ‘미국이 알아서 해라’고만 했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왜 미국에 갔었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종속변수로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을 운영하려는 것인지 미국 백악관과 상하원을 찾아 알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소위 인도·태평양 전략 아래 일본 중심의 동북아 안보를 더 중요시 하는지, 아니면 한미일 공조를 가져가려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김 차장은 3박4일 방문 기간 백악관 인사, 상하원 의원, 미 행정부 주요 인사를 통틀어 15명 정도를 만나고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왜 만나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김 차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해서 타결했다”며 “아마 그쪽에서 봤을 때는 ‘타협안을 만들어서 제안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협상 가능한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만나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전략과 관련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크게 3가지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첫째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있다. 둘째는 4차산업혁명 기술 분야에 투자를 많이하고, 유능한 기술자들을 모셔와야 하고 인센티브를 많이 줘야한다”며 “셋째는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좋은 대응조치는 우리가 이 기회에 일본보다 부품소재나 전자제품, 4차산업 혁명 기술면에서 일본을 ‘캐치 업(catch up)’하거나 일본을 앞장 서는 게 가장 좋은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 김 차장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은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며 연장 여부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김 차장은 국방력 강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도 제시했다.

그는 “우리가 안보 분야에서도 외부 세력의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부품소재처럼 똑같은 문제가 안 생긴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일본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정찰용 군사위성 도입에 대한 검토를 시사했다.

김 차장은 “(국방력 강화)는 한미동맹을 더 강화시키는 차원이다. 중국은 정찰용 인공위성이 30개가 넘고, 일본은 8개가 있지만 우리는 1개도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반도체 분야의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 목줄을 쥐려했던 것처럼 안보 분야에서도 우리보다 더 뛰어난 정보를 갖고 좌지우지 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대비를 해야한다는 게 김 차장의 생각이다.

김 차장은 “그래서 우리는 빨리 저궤도에 정찰용 인공위성을 5개, 혹은 25개를 만들어서 쏴서 올려야 한다”며 “5개면 2시간에 한 번씩 사진을 찍을 수 있고, 25개가 있으면 30분 단위로 한 번씩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것을 계속 노력해야 한다”며 정찰용 위성 제조에 대한 기대효과를 언급했다.

아울러 “올해 국방예산은 작년 대비 8.2% 증가했다”며 “2020년도에는 아마 7.6% 정도가 (증가)될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이런 분야(정찰위성)에 투자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차장은 참여정부 시절 자신이 일본과의 FTA 타결을 반대했던 사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김 차장은 “당시는 핸드폰 부품의 50% 이상이 일본 부품이던 때”라며 “‘일본과의 소재·부품 분야의 격차가 너무 큰 상황에서 한일 FTA를 타결했을 경우 제2의 한일 강제병합이 될 것 같다.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말씀드렸었다”고 말했다.

한일 FTA 체결을 통해 관세를 낮춰도 일본 특유의 비관세 무역장벽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일본과의 FTA 반대 이유였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김 차장은 또 “노 대통령 때도 아베 신조가 일본 총리였는데, 이름의 한자 ‘신’자는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사무라이 ‘신사쿠 다카스키’와 같은 ‘신’자를 사용한다”며 “그 사람들이 주장한 게 정한론(征韓論·1870년대 전후 일본에서 대두된 조선 공략론)이다. 정한론의 DNA가 흐르는 사람과 이 시점에서 FTA를 체결해서 제2의 한일강제병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한일 FTA를 깼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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