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홍수 속에도 ‘글쓰기’ 매력에 빠진 2030…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1일 15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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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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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한 문단에서 여주(여자 주인공) 3인칭 시점을 남주(남자 주인공) 3인칭 시점으로 바꿔서 썼는데 헷갈리나요?”

“시점이 통일되지 않으면 독자의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보통 여주 시점이 중심이지만 남주 시점도 5분 1정도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남주가 사랑에 빠지는 걸 독자들이 알 수 있죠.”

3일 서울 강남구의 한 강의실. 웹소설 연재 사이트 ‘문피아’의 웹소설 아카데미 ‘로맨스 클래스’ 8주차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수강생은 20, 30대로, 직장인도 있어 매주 토요일에 수업한다. 90분 수업이 끝난 뒤 수강생들은 30분 동안 강사인 양효진 작가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요즘 2030은 유튜브 같은 영상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접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온라인에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젊은층이 작가가 되는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20, 30대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글쓰기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나만의 세계 만들 수 있어”

이날 약 99㎡(30평) 규모의 문피아 아카데미 강의실에는 수강생 20명이 필명을 쓴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직장인과 대학생은 물론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인 수강생도 있었다. 수업에서는 독자와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방법 등 다양한 실전 팁을 알려줬다.

수강생들은 이 강좌를 듣기 위해 ‘바늘구멍’ 심사를 통과했다. 현재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3개의 문피아 웹소설 강좌에는 1000여 명이 몰렸다. 올 5월 문피아가 개최한 ‘제5회 대한민국 웹소설 공모대전’에 접수된 작품은 4700여 편이나 됐다. 지난해보다 57% 늘어난 규모다. 2011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양 작가는 “12주간 진행되는 강좌는 시놉시스 선정, 문장 훈련 등으로 구성됐고, 데뷔작 1개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환철 문피아 대표는 “다양한 콘텐츠를 창작하고 노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이 생기면서 이전보다 창작자로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됐다”며 “글쓰기는 영상과 달리 전문 툴을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젊은층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가를 꿈꾸는 20대 중반의 한 수강생은 “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쓰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며 “영상은 콘텐츠를 만들 때 한계가 많지만 글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잊었던 ‘나’ 찾기

직장인의 진로, 창업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퇴사학교’는 2016년 문을 열었던 때부터 글쓰기 강의를 개설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나를 찾는 30일 글쓰기’라는 강의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들이 몰리고 있다. 박상진 퇴사학교 매니저는 “퇴근 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수강생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업을 개설하려 애쓴다”며 “일주일에 글을 한 편씩 쓰고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는 글쓰기 수업에는 꾸준히 수강생이 모이고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이들이 쓰는 글의 주제는 ‘나’에서 시작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 생활 속에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다. 수강생들이 말하는 글쓰기의 효과는 ‘몰입과 해소’다. 차분하게 생각하며 글을 쓴 뒤, 동료들과 함께 이를 읽어보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진행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독립출판을 추진하는 강좌에는 30대 수강생이 많다. 실용서나 소설, 에세이를 내는 출판 편집 실무를 배울 수 있는데다 콘텐츠를 직접 출간하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메리 작가 “젊은층이 글쓰기에 관심 갖는 이유는…” ▼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데뷔한 서메리 작가는 “구성이 콘텐츠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영상 제작도 글쓰기와 같다”고 말했다. 서메리 작가 제공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데뷔한 서메리 작가는 “구성이 콘텐츠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영상 제작도 글쓰기와 같다”고 말했다. 서메리 작가 제공
서메리 작가(31)는 자신의 프리랜서 도전기를 담은 책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미래의 창·1만4800원)를 올 3월 출간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브런치’에 지난해 6월부터 연재한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다. 서 작가는 지난달 29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튜브와 같은 영상 콘텐츠도 내용을 풀어가는 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글쓰기와 같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중견기업에서 5년간 일하다 작가로 전업한 서 작가는 처음에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외국 서적을 번역했다. 서 작가는 “번역은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만드는 작업이자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작업”이라며 “번역해 국내에 소개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책의 전체 구성을 익힐 수 있었던 게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젊은층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데 대해 그는 “영상시대에도 영상편집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빼고 나면 결국 남는 핵심은 콘텐츠 구성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튜브처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생겨도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구성력은 글쓰기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서 작가는 최근 한 유명 학원과 계약해 일반적인 글쓰기에 대한 온라인 강좌를 이달 제작할 예정이다. 서 작가는 “논술 강좌가 아닌 일반 글쓰기 강좌를 학원에서 만드는 것은 그만큼 글쓰기에 대한 젊은층의 수요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봤다.

서 작가는 지난해 1월 습작 심사를 거쳐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전 문학 작품을 소개하거나 여행 후기를 쓰다가 프리랜서 도전기 책까지 내게 됐다. 현재 브런치에는 2만 7000여 명의 작가가 활동 중이다. 브런치 작가가 출간한 책은 1200여 권이다. 브런치는 매년 공모전을 통해 출간을 지원하는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열고 있다. 올 1월 마감된 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한 글은 역대 최다인 8만여 편이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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