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억류’ 김동철 “내 스파이활동 돕던 6명 처형당해”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11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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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인터뷰서 억류 경험 인터뷰
욕조 고문 받다가 두 차례 기절
"北, 가장 엄격한 독재 체제" 비판

2015년 북한에 체포됐다가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5월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5) 목사가 “나를 위해 스파이로 일하다가 처형된 6명의 북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김 목사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체포에 얽힌 전후 사정과 강제노역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김 목사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행을 택했으며 목사가 됐다. 이후 2000년 중국동포인 아내를 만나 선교를 하러 중국으로 떠났다. 북한 고위인사와 친척 관계였던 아내의 인맥을 이용해 2002년 나선지구 거주 허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북한에서는 외국인 투자유치가 한창이었다. 김 목사는 280만달러를 쏟아부어 5층짜리 외국인 전용 ‘두만강 호텔’을 지었다.

김 목사는 군 인사와 신뢰를 쌓기 위해 호텔 연간 매출 3분의 1정도를 북한 정부에 기부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의 활발한 사업 및 기부 활동으로 북한 정부로부터 3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인으로서는 흔치 않게 북한에서 인맥을 쌓아가자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이 그에게 접근했다.

요원들은 카메라가 숨겨진 손목시계 등 스파이 장비를 제공했다. 그들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원했다.

김 목사는 “북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런 정권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혼란스럽고 궁금했다”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0월2일 체포돼 31개월에 걸친 억류 생활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의 조사 과정에서 등 뒤로 두 손을 묶인 채 욕조로 머리를 밀어 넣는 고문을 받았다. 두 차례 기절하기도 했다.

결국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고 평양 외곽의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429번 죄수’로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주일에 6일을 일했다.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식물의 뿌리, 유충을 먹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때 김상덕씨, 김학송씨와 함께 미국으로 송환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북한에 대해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독재 체제와 노예 체제를 갖춘 나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억류 생활을 담은 책 ‘경계인’(Border Rider)을 출간했으며 영문판과 일본어판도 낼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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