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 주범, 3년째 미송환…속타는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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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8월 11일 0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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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 필리핀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낸다더라고요. 빨리 한국으로 송환해서 처벌받게 하고 싶은데, 진행상황을 알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2016년 10월 필리핀 팜팡가주의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은 박모씨(41)가 주도하고 그가 끌어들인 김모씨(37)가 거들었다.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현지 호텔 카지노에 투자한 박씨가 돈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이들을 모두 죽이고 투자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살인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김씨는 한국에서 붙잡혀 징역 30년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지만 주범인 박씨는 필리핀에 체류하고 있다.

법무부는 박씨가 현지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필리핀 교민사회 등에 따르면 박씨는 수용시설 관계자를 매수해 반자유의 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이후 현지에서 최초 체포된 이후 한 차례 탈옥했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의 유족은 주범 박씨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유족은 박씨가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공범 김씨보다 현지 법원에서 적은 형을 선고받거나, 형이 확정되더라도 지금처럼 교정시설 관계자를 매수해 현지에서 자유롭게 지내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박씨를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으면 제대로 죗값을 묻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유족 “주범 호의호식…현지 상황 알 수 없어 속 탄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필리핀 사탕수수밭 현장 © News1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필리핀 사탕수수밭 현장 © News1

박씨는 현지에서 살인과 불법무기(총기)소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는 했지만 사건 발생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현지 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은 박씨가 국내로 송환되기는커녕 3년이 되도록 1심 결론조차 나지 않은 상황에 속을 태우고 있다. 현지 상황을 알 수 있는 창구는 법무부인데, 유족은 법무부가 유족의 애타는 심정에 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다는 서운함도 드러냈다.

피해자 유족 A씨(26)는 “아버지를 죽인 박씨가 현지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법무부에 현지 재판 진행 상황 등을 문의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송환을 재촉하고 있다’는 말만 하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어머니는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지셨기 때문에 가세도 많이 기운 상황”이라며 “그나마 예전에는 공범 김씨의 재판도 다 참석했었는데 지금은 군대에 있어 더욱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피해자의 유족은 너무 연로해서 몸이 쇠약하거나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 박씨 송환과 관련된 일은 A씨가 유족 대표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단념했을 텐데 법무부에서는 ‘4~5년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만 설명을 하고 있다”며 “그외 자세한 내용은 유족 신분에서 질의를 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속이 탄다”고 말했다.

◇법무부 “작년 4월 송환 관련 실무협의 진행…계속 노력 중”

이에 대해 법무부는 필리핀 사법당국에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범죄인 인도 청구를 위해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에는 필리핀 현지에 실무진을 파견해 범죄인 인도 청구 관련 실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지 수사기관 등 사법당국이 현지 절차에 따라 박씨를 재판에 넘긴 상황에서 무작정 송환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박씨는 범죄인 인도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건 직후 박씨에 대해 추방명령이 내려지기는 했었지만, 살인의 죄질이 중해 현지 사법당국이 직접 기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족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지만 각국의 사법 주권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서 엄정하고 신속하게 재판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1심을 어서 진행해 달라고 독촉하고 있고, 탈옥 우려도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 지원단체 “주범 데려와야 죄질 상응하는 처벌 가능”

살인 공범 김씨가 2016년 당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살인 공범 김씨가 2016년 당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유족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피해자지원협회 관계자는 박씨가 Δ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해 죄질이 나쁜 점 Δ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큰 점 등을 들어 그를 반드시 송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범행 직후에는 박씨에 대해 추방명령이 내려졌던 만큼 우리 정부가 초반에 긴밀하게 대응했다면 주범을 어렵지 않게 데려왔을 것이라면서, 그 시기를 놓쳐 박씨가 현지에서 기소까지 돼 송환이 여의치 않아졌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유사수신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라 필리핀으로 도피를 했다가 살해를 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씨를 송환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공범 김씨을 범행에 끌어들이고 돈 때문에 3명이나 살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엄벌이 꼭 필요하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김씨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범행에 가담하면 1억원을 주겠다’는 박씨의 제안을 듣고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가 살인에 동조하기는 했지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모두 박씨인 것으로 조사됐다.

협회 관계자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모두 한국인인 사건인 만큼 한국 사법당국과 유가족이 강력하게 송환을 요청한다면 필리핀에서도 이를 마냥 거부하지만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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