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 “메이저 퀸 솔직히 당황스러워… 그리웠던 떡볶이 먹고싶어요”[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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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100일 투어 마치고 금의환향한 고진영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 퀸’으로 등극한 고진영이 모처럼의 휴식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하기 위해 6일 귀국했다. 고진영은 “LPGA투어에서처럼 ‘제2의 고향’인 제주도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고진영이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모습. 동아일보DB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 퀸’으로 등극한 고진영이 모처럼의 휴식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하기 위해 6일 귀국했다. 고진영은 “LPGA투어에서처럼 ‘제2의 고향’인 제주도에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고진영이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모습. 동아일보DB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퀸’에 오르며 금의환향한 고진영(24)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번 시즌 2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ANA 인스피레이션, 에비앙 챔피언십)을 달성하며 5개 메이저 대회를 합산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주는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 수상을 확정한 고진영은 6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제2의 고향’ 제주를 찾았다.

제주공항 도착 직후 고진영은 후원사인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마련한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공사 직원 10여 명은 ‘고진영 누나 에비앙 우승을 축하드려용∼’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환호했다. 고진영은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고진영은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다 9일부터 제주에서 열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한다. 고진영이 국내 대회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 10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이후 10개월 만이다. 본보는 고진영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마치고 영국에서 출국하기 전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6일 제주공항에서도 고진영을 만났다.

○ 골프 벌레에서 메이저 퀸으로


―지난해 LPGA투어 신인왕에 오른 데 이어 투어 2년 차인 이번 시즌 3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번 시즌 LPGA투어에서 행복한 경험을 많이 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과 세계랭킹 1위는 예상조차 못한 성과라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하다(웃음).”

고진영은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단독 3위로 마쳤다. 아쉽게 메이저 3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이미 털어낸 듯했다. 마치 보디빌더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고진영은 이렇게 썼다.

‘(LPGA투어 활동을 한) 100일 동안 골프 벌레여서 행복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 부족함을 찾았으니….’

고진영은 5월 말 US여자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뒤 2개월여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생일(7월 7일)에도 미국 시카고에서 스윙 코치인 이시우 프로와 훈련을 했다.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제주도를 찾은 기분이 어떤가.

“짧은 기간이지만 ‘힐링의 장소’ 제주도를 찾게 돼 기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고씨 본관이 제주이기 때문에 제주는 내 뿌리가 시작된 곳이다. 제주에 오면 고향에 온 기분이다.”

제주에는 고진영의 아버지 고성태 씨(56)와 어머니 김미경 씨(50)가 살고 있다. 아버지 고 씨는 복싱 선수 출신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아 운동선수로는 작고 삐쩍 마른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하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줄넘기와 헬스 운동을 시켜 단단한 근력을 갖추게 했다. 딸의 LPGA투어에 이따금 동행하는 고진영의 부모지만 올해 고진영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는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현장에 계시지 않을 때 우승을 해 많이 속상하실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던 고진영이다.

―제주에서 부모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뭔가.

“꼭 안아드리고 싶다. 내가 외동딸이다 보니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항상 많은 걱정을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너무나 그리웠던(?) 떡볶이를 먹고 싶다.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니까…. 가족들과 탕 요리도 같이 먹고 싶다.”

고진영은 “비시즌에 협재해수욕장과 함덕해수욕장 등 경관이 좋은 해변의 카페에 가서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흑돼지 맛집도 자주 찾아간다”고 덧붙였다.

○ 행복 골퍼의 비결은 고진감래

―이번 시즌 시작 전에 자신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고진영은 브리티시여자오픈을 3위로 마친 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는 글과 함께 보디빌더 같은 포즈를 취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고진영 인스타그램 캡처
고진영은 브리티시여자오픈을 3위로 마친 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는 글과 함께 보디빌더 같은 포즈를 취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고진영 인스타그램 캡처
“사실 시즌 시작 전에는 메이저 우승에 대한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 세계 5위 안에 들자는 생각뿐이었다. 다만 나 스스로 골프 완성도를 높이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세계 1위를 질주 중인 고진영의 성적표는 A+라도 줄 만하다. LPGA투어 상금(228만1131달러), 평균 타수(69.03타),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207점)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평소 고진영은 “행복한 골퍼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좌우명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사자성어 ‘고진감래’다. 늘 고된 훈련을 참아내는 고진영의 끈기가 그린을 당당히 정복하는 그의 행복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스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번 시즌 한때 스윙이 흐트러졌을 때는 스윙 코치를 미국으로 초빙해 정말 많은 훈련을 했다. 평소 ‘양보다 질’을 중시해왔지만 이번에는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남다른 집념 덕분에 고진영은 어떤 상황에서도 루틴과 스윙 리듬이 한결같은 골퍼로 거듭났다. 에비앙 챔피언십 당시 고진영이 선두와의 4타 차 열세를 극복하고 역전 우승을 차지한 비결이다.

―경기를 할 때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골프 클럽을 잡을 때마다 신중한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경기 도중 ‘하고 싶은 샷’과 ‘할 수 있는 샷’, ‘해야 하는 샷’을 놓고 갈등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샷은 우선 절제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선택지 중 한 개를 캐디와 함께 선택한 뒤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 여왕의 비밀 무기는 껌과 책?

―에비앙 챔피언십 때 경기 도중 껌을 씹으며 그린 위를 걸어간 게 화제가 됐다.


“대회 마지막 날 제가 보기(12번홀·파4)를 기록했다. 그랬더니 캐디(데이비드 브루커)가 껌을 건네더라. 국내에서 투어를 할 때는 껌을 씹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긴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지만 혹시나 이런 모습을 팬들이 불편해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껌의 효과 덕분이었을까. 당시 고진영은 곧바로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으며 분위기를 반전한 끝에 우승에 성공했다. 홍정기 차의과대 스포츠의학대학원장은 “껌을 씹는 행동은 골퍼들이 극한 상황에서 루틴을 유지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압박감이 상당할 텐데 골프장 밖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나.


“LPGA투어 생활을 하다 보면 여가시간이 한정적이다. 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가까운 관광지를 찾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울 때는 호텔 로비나 카페에서 독서를 한다. 외동딸이기에 어려서부터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철학책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휴식은 짧고 대회는 다시 코앞이다. 9일부터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하는데….

“매주 대회에 참가하고 다시 이동하는 바쁜 투어 일정 속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다 보니 스스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그는 KLPGA투어 프로필에 ‘생일에 7이 두 번 나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더욱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도 모처럼 만나는 국내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 내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는 에비앙 챔피언십처럼 소중한 대회다. 2017년처럼 ‘제2의 고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 좋겠다.”

제주 대회를 마친 뒤에 고진영은 가족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낸 뒤 캐나다에서 열리는 CP 위민스 오픈(8월 22∼25일·현지 시간)에 맞춰 출국할 예정이다. 24세 황금돼지띠 고진영은 요즘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지도 모른다.

제주=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고진영#lpga 투어#메이저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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