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A 씨는 올 6월 정부로부터 받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청년수당) 50만 원 전액을 스마트워치 구입에 썼다. A 씨는 정부에 제출한 사유서에서 “공부할 때 휴대전화를 자주 보지 않아 중요한 연락을 놓친다”며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스톱워치와 알람 용도로 애플워치를 사용하겠다”고 구입한 이유를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A 씨 지출이 구직활동과 관련 있어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6월 청년수당을 받아 한 번에 30만 원 이상 지출한 청년 5명 중 1명은 A 씨처럼 비싼 전자기기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고용부가 구직활동과의 연관성이 없다며 경고 조치를 내린 것은 전체 1751건 가운데 11건(0.6%)에 불과했다. 청년수당 사용 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3월 시행된 청년수당은 미취업 청년에게 구직활동비 명목으로 월 50만 원씩 최장 6개월간 지원하는 정책이다. 청년의 구직활동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유흥주점, 성인용품점 등 일부 제한 업종 외에는 어디든 쓸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일시불로 30만 원 이상 지출한 건은 구직활동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있다. 지원금 오남용과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취지다. 구직활동과 관련 없는 고액 지출이 확인되면 경고 조치가 내려지고 세 번 이상 반복되면 지원이 중단된다. 사용한 지원금을 환수하지는 않는다. ● 고액 지출 19%, 전자기기 구입
6일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6월 사용내역(30만 원 이상)’ 1751건을 동아일보가 분석한 결과 교육비(인터넷강의 및 운전면허학원 수강료, 교재비 등)가 1228건(70.1%)으로 가장 많았다. 태블릿PC,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 구입이 332건(19%)으로 뒤를 이었고 주거비(4.1%), 정장 등 취업활동 관련 제품 구입(3.1%), 미용·의료·스포츠센터 등록(2.9%) 순이었다.
청년수당으로 전자기기를 구입한 청년들은 대부분 사유서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직무와 관련된 작업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고 고용부는 구입을 승인했다.
하지만 청년수당 지출과 구직활동의 연관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얘기가 많다.
B 씨는 중국어학원비로 6월 수당 중 31만5000원을 썼다. 지원하려는 회사가 중국어자격증 보유자를 우대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청년은 당초 정부에 제출한 구직활동계획대로 청년수당을 쓰지 않았다며 고용부 경고를 받았다.
고용부가 구직활동과 관련 없다고 판단한 11건 중 7건은 B 씨처럼 학원비나 인터넷강의 수강료로 청년수당을 쓴 경우다. 교육 목적으로 청년수당을 썼더라도 구직활동계획과 동떨어져선 안 된다고 고용부는 설명한다.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계획을 냈다면 시험 과목에 없는 토익 학원을 다녀선 안 된다는 얘기다.
● ‘들쭉날쭉’ 승인 기준
청년수당으로 휴대전화요금 37만2000원을 납부한 C 씨는 구직활동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반면 34만2000원을 휴대전화 통신비로 쓴 뒤 “식비와 생필품 비용을 휴대전화 소액 결제로 처리했다”고 소명한 D 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승인을 받았다.
컴퓨터 포토샵 작업을 주로 한다는 E 씨는 손목이 아프고 고장이 잘 난다는 이유로 34만 원짜리 키보드를 샀다. “이왕 나라에서 주는 돈, 오래 쓸 고가 키보드를 구매했다”고 사유서에 적은 E 씨 역시 승인이 떨어졌다.
영어강사로서 좋은 이미지를 줘야 한다며 시력교정수술(60만 원)을 받거나 면접에서 콤플렉스를 느낀다며 앞니를 교정하는 데 49만9000원을 써도 고용부는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시력이 나빠 눈을 찌푸리게 된다며 42만 원짜리 안경을 사거나 문신 제거에 30만 원을 쓴 사례 역시 승인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청년이 구직활동을 계획하고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 구직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면 다양한 구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정책인 청년수당이 현금성 복지정책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기준의 모호함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달부터 기본 요건(만 18~34세, 졸업·중퇴 후 2년 이내, 중위소득 120% 이하 미취업자)만 충족되면 청년수당을 지급하게 돼 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구직활동과의 연관성이란 소명하기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며 “지원금이 취지에 맞게 쓰이도록 정부가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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