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불안해 할 필요없다” vs 전문가들 “타격, 예상보다 클 수도”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5일 15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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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간소화 국가·백색국가) 한국 배제 발표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5일 코스피는 전거래일 대비 51.15포인트(-2.56%)나 빠진 1946.98로 마감했고 코스닥은 45.91포인트(7.46%) 급락해 569.79까지 밀려났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3원 오른 1215.3원에 마감하며 3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본이 추가적으로 금융분야 보복을 단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만약 일본이 보복조치를 금융분야로 확대하더라도 그 파급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일본계 자금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데다 국내 금융기관 등의 높은 신인도를 바탕으로 일본자금을 대체할 해외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란 판단이다. 또 외환보유고 역시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금융보복이 현실화되더라도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같은 ‘일대 혼란’은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 규모는 최대 52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중 국내은행의 일본계 외화차입금은 지난 6월말 기준 92억6000만달러(약 10조6000억원)로 전체 외화차입금의 6.6%에 그친다.

같은 기간 외화유동성비율(LCR)은 111.2%(잠정)로 규제비율(80%)을 크게 넘어서고 외화여유자금은 292억 달러로 3개월내 만기도래 외화차입금(255억 달러)을 37억 달러(약 4조3000억원) 웃돌고 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기준 4031억1000만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주식·채권시장의 경우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외국인자금 중 일본 비중은 각각 2.3%(13조원), 1.3%(1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국제투자대조표 기타투자 중 대일 비중은 6.5%(약 13조6000억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이 크지 않고 만약 일본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하더라도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은행의 대(對) 한국 자산규모는 563억 달러(약 68조3500억원)로 우리나라 은행 총자산(2조2602억 달러) 대비 2.5%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은행의 대 한국 자산규모(2894억 달러)의 약 15.6%이며, 미국계(27.3%), 영국계(26.4%)에 이어 3번째 규모다.

특히 보고서는 지난해 말 기준 주요 기업의 총 유보액은 254조원으로 추산되며 현금·단기금융자산 규모는 45조원으로 일본계 은행의 국내 기업 여신을 크게 웃돌아 일본의 자금 회수에도 충분히 대응할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계 은행의 국내기업 여신은 23조5000억원이며 대 기업 여신이 주로 대기업(70%)에 집중(중소기업 비중은 1% 내외)돼 있다. 현대차·삼성전자·SK, LG·롯데 등 5대 기업의 일본계 은행 여신은 각각 1조~3조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강태수 국제거시금융실 국제금융팀 선임연구위원은 “일본계 은행의 대 기업 여신이 주로 대기업에 치중돼 있음을 감안할 때 일본의 금융자금이 회수되더라도 기업 부분을 통한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금융부분 보복조치 중 하나로 한국 기업 신용장(letter of credit)에 대한 일본계 은행의 보증을 제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국 경제는 화이트리스트 배제 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이에 대해 “한국 기업 신용장에 대한 일본계 은행의 보증(confirmation)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며 “보증 제한 시에도 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박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그동안 무역거래 결제 형태가 신용장 방식에서 송금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신용장 이용 비중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지난 1998년 62.1%에 달하는 신용장 이용 비중은 지난해 15.2%로 감소해 전체 수입액중 15%대 수준에 불과하다.

또 신용장 거래 비중이 축소된 데 더해 과거와 달리 국내 은행 신용도가 일본계 은행보다 높아지면서 현재 국내 은행이 개설하는 신용장에 일본계 은행의 보증을 제공받는 비중이 매우 낮다는 설명이다. 국내은행의 대(對) 일본 수입 관련 신용장중 일본계 은행의 보증 비중은 지난해 약 0.3%, 올 상반기중 약 0.1%에 그쳤다.

금융위는 “일본계 보증발급 은행이 보증발급 거부 등으로 보복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무역금융 뿐만 아니라 우리 금융부문은 전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크지 않고 대체 가능성이 높으며 외환보유액도 충분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IMF 당시에도 일본이 가장 먼저 자금회수에 나서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던 전례가 있고 지난 2일 이후 국내 금융시장 내 불안감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 당초 예상보다 타격이 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자금회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라며 “(한일 양국이) 전면전 양상으로 가면 금융 쪽을 건드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이 당장 금융분야를 제재하지 않더라도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두고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환율 불안과 증시 폭락은 거의 전적으로 한일관계의 악화에 따른 것”이라며 “지난 2일 이후 당국이 주가 하락을 얼마나 방어하려고 하고 외환시장에서 환율 폭등을 얼마나 제어하려고 했는지 그 규모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일본 자금 회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투자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강태수 연구위원도 “과거 일본계 은행의 자금 회수가 외환위기를 촉발했던 전력이 있고 일본계 저축은행·대부업계로 부터의 국내 주요 차입자가 소상공인·자영업자인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금융기관 등이 연계해 일본계 은행을 포함한 외국계 은행의 자금흐름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미리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유관기관과 시장불안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고 필요시 시장상황별로 기 마련된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신속하고 과감하게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손 부위원장은 “앞으로 우리 기업들의 생산과 수출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정부는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며 “민·관이 총력 대응하고 있는 만큼 예단해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경계감을 늦추지 않고 국내·외 금융시장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차분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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