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禁書) 없는 홍콩에 닥친…자유 얽매는 중국화(化)의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4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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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대만 타이베이를 떠나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는 대만 항공사 비행기에 올랐다. 자유를 찾아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향하는 ‘홍콩 엑소더스’ 현장을 취재한 직후였다. 대만 신문인 ‘롄허바오(聯合報)’ 한 부를 집어들었다. 비행기가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승무원이 신문을 달라고 했다. 황당한 일에 옆에 앉은 대만 승객도 함께 이유를 물었다. 승무원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대답을 피하며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베이징에 도착해 하루 먼저 도착한 동료 특파원에게 얘기하니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입국장으로 향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X레이 검사 과정에서 공항 직원이 짐 안에 책이 있다며 대만에서 왔느냐며 가방을 열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 소설책임을 확인한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동포’라 부르는 대만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신문이나 책을 중국 안으로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의 언론 출판 자유 현주소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타이베이에서 홍콩 퉁뤄완 서점 주인이었던 람윙키 씨(64)를 만났다. 그는 중국 국가주석 지도부를 다룬 책을 출판했다가 2015년 중국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 람 씨는 올해 4월 “개인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껴” 대만으로 사실상 망명했다.

인터뷰 첫 질문은 ‘금서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억류된 것’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는 질문을 듣자마자 반박했다.

“홍콩에는 금서(禁書)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금서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홍콩 출판인들이 생각하는 자유이자 인권이에요. 금서는 중국 본토에만 있는 말이에요.”

홍콩에선 표현의 자유를 누렸던 그에게 중국 당국이 “국가안보 위반, 국가정권 전복” 등의 죄를 적용했다. 최대의 공포는 어딘지도 모르는 큰 건물 안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정신적 압박이었다. 그는 정식 재판도 없이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비밀 장소로 보내질 때 앞을 볼 수 없도록 안대를 차야 했다. 갇혀 있을 때 신은 슬리퍼가 닝보산(産)이어서 지역을 추정했다고 한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대만 이민을 계획하는 홍콩인들은 중국의 사법제도를 불신하고 홍콩의 중국화를 두려워했다. 대규모 반중 시위가 4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홍콩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공포가 컸다. 홍콩에 남는 것이 위험해 떠나겠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이민이라지만 정치적 난민과 차이가 없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CCTV 캡쳐) 2019.6.21/뉴스1 자료사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CCTV 캡쳐) 2019.6.21/뉴스1 자료사진
중국 당국은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연일 무력 진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군 투입 가능성도 우회적으로 시사한다. 하지만 공포감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시진핑 지도부는 대만을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식으로 통일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일국양제인 홍콩에서 발생한 공포 때문에 대만에서도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시작된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와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공개 회동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과연 금서 없는 자유를 누려왔던 홍콩인의 공포를 해소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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