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유무역 짓밟은 日의 無道… 단호히 대응하되 냉정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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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예고한 대로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어제 각의에서 의결했다. 7일 공표 후 28일부터 시행되면 지난달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으로 시작된 수출 규제 대상이 사실상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전 분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규제가 강화되는 일본의 전략물자는 1194개 품목이며 이 가운데 영향이 큰 품목은 159개 정도다. 각의 결정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즉각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무역의 무기화는 촘촘하게 얽혀 있는 세계적 분업체계를 무너뜨리는 비열한 행태다. 무엇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월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공정하면서도 차별 없는 무역정책의 필요성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한 자신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어제 “아시아에서 한국만이 우대조치 대상국이었는데 그걸 대만 등 다른 아시아국들과 같은 급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참으로 궁색한 궤변이다. 국제사회는 전략물자의 위험국가 수출을 막기 위해 4대 체제를 만들어 왔고 여기에 29개국이 가입해 이를 준수해 왔다. 이들 29개국 대부분은 서로 수출허가를 간소화해 주는 백색국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동안 4대 체제에 가입한 29개 국가 중 백색국가에 포함된 나라를 나중에 제외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는데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뺀 것이다.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이유로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가 잘 안 된다는 점을 든 것도 터무니없는 억지다. 한국이 전략물자 수출통제 면에서 일본보다 더 엄격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외교 문제를 경제로 보복하기 위해 전혀 연관성 없는 안보논리를 끌어댄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아베 신조 정부가 이번 각의 결정을 즉각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전략적이어야 한다. 아베 정부 결정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여론전은 더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펴나가면서도 여러 경로의 외교채널을 가동하는 외교적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백색국가 제외 결정 공표 후 3주의 유예기간이 있다. 경우에 따라 그 시간은 늘어날 수도 있는 만큼 외교협상의 출구를 막는 극단적인 강경책은 피해야 한다. 결국 한일 양국 정상 간 담판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상황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기념사와 10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 등이 고비가 될 수 있다.

미국 카드를 통한 상황 급반전만 기대하고 있어선 안 된다. 어제 방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은 “이 상황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렵지만 할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적극 중재에 나설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정부는 예상되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일본 부품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 마련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과 관련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필수 소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여권 일각에서 한일 협상의 지렛대로 거론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카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장사정포 도발과 중국·러시아가 우리의 하늘을 침범해 동북아 안보지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GSOMIA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이어주는 주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일본보다 미국이 더 중시한다. 일본의 도발에 맞서기 위한 압박용일 순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경제 문제에 안보 이슈를 연계해 외교 문제를 경제로 보복하는 일본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는지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국내에서 우리끼리 소모전을 펼쳐 적전분열 양상을 보여선 안 된다. 자유한국당도 “일본이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일본 비판에 한목소리를 냈다. 대외적 메시지는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건전한 대안 제시조차 ‘친일-반일’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태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지만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풀어갈 방안을 진지하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가 자유무역의 원칙을 훼손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한 여망을 저버림에 따라 당분간 양국 간에는 강경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갈등이 경제전쟁으로 번지면서 장기화할수록 그 피해는 양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상대방의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극한 대결은 피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이성을 되찾아 협상의 길로 돌아와야 하고, 문 대통령도 외교적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백색국가 제외#전략물자#자유무역#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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