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득을 보는가[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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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술은 더 많은 신사업 출현시켜… 신사업 허용은 국민편익이 척도 돼야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당뇨와 고혈압은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만성질환이다. 다리가 불편한 시골 노인이라면 읍내 병원에 약을 타러 가는 것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불편을 앞으로 강원도에 사는 노인들은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규제자유특구를 최근 발표했는데, 강원도가 당뇨와 고혈압에 한해서 제한적인 원격진료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진단은 병원에 가서 받고, 재진은 환자의 집에 간호사가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환자들의 편익이 증대되는 방향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번 규제자유특구 발표 때 원격의료가 기술적으로는 얼마나 비상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지가 새삼 관심을 끌었다. 현재는 원격모니터링만 가능한 상황이다. 혈당이나 혈압을 환자가 집에서 기기를 이용해 측정하면 의사가 병원에서 그 측정값만 지켜볼 수 있다. 측정 상태를 보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요즘 식습관이 어떤지, 약은 제대로 복용하고 있는지 등을 물으면 불법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통신망이 깔린 나라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통화를 하는 데 아무런 애로가 없는데도 그 사용을 막아 놓은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증기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마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하도록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증기자동차를 관리했다는 적기(Red Flag)법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규제는 사전적으로는 ‘규칙이나 규정에 의해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을 의미한다. 등장 속도를 빨리하는 신기술과 사회적 안정성을 전제로 하는 규칙(법)의 충돌은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택시업계와 모빌리티업계 간의 문제를 정리한 ‘택시-모빌리티 상생 방안’에서도 기술과 규칙의 충돌이 있다. 모빌리티업계는 기존 법 제도 안에서 소비자들에게 승합차를 초단기로 렌트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개척한 측면이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위치 파악이 가능해지고, 역시 실시간으로 결제가 가능해졌기에 그런 사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운송 서비스라는 정책당국의 해석에 따라 모빌리티업계는 사업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신기술과 기존 규칙이 충돌할 때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선(善)이 될 것인가. 발표된 정책이 복잡해 보이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클수록 더 차분하게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해야 한다. 이때 요긴한 질문이 ‘누가 이득을 보는가’이다. 정책의 수혜 대상은 국민이기에 국민의 편익을 최우선시하는 결정이 나와야 한다. 좋은 규제는 건전한 경쟁을 낳고, 나쁜 규제는 독과점을 유발한다는 얘기도 공동체 구성원의 편익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다.

강원도에서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발표된 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원격의료가 일반화된다면 대형 의료기관으로 환자가 몰리고, 원격의료에 필요한 기기들을 만드는 의료 대기업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다.

택시-모빌리티 상생 방안이 발표되고 나서는 택시업계는 환영했고, 모빌리티업계는 신산업의 싹을 죽였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두 사안 모두 국민의 편익 측면에서 고려하면 최선의 선택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선택한 방향으로 가는 길에 예상되는 이해 상충이나 안전, 재산권 침해 등은 정부가 나서서 보완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축약을 의미한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그만큼 새 사업의 출현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신산업의 등장을 국민 편익과 공동체의 풍요로 이끌어야 하는 것은 정부의 막중한 임무다. 그게 ‘진보’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r@donga.com
#규제자유특구#신사업#신기술#원격의료#국민 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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