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이 나는 용은 후회한다[DBR]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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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독점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전매(專賣)라 한다.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예로부터 전매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곤 했다. 소금을 독점하고, 철을 독점하고, 술을 독점하고, 차를 독점하고, 말을 독점해서 세수를 올렸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술, 담배, 석유 등에 특별세를 설정해 수익을 올리는 것의 원조 격인 셈이다. 중국 제국들은 명예도 전매했다.

사람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니 오히려 돈을 벌면 벌수록 자신이 갖지 못한 또 다른 힘에 대한 갈망이 깊어만 간다. 그래서 돈을 내고 명예를 사고자 하는 이가 생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수요를 이용해서 명예직을 팔았다. 이름 자리를 비워놓은 명예직 임명장을 대량으로 만든 뒤, 일정 금액을 내는 민간인에게 그의 이름을 적어 수여하는 식이다. 고작 그 종이 한 장에 사람들이 돈을 쓸까 싶겠지만, 정말로 썼다.

조선 역시 비슷한 관행으로 명예를 반독점한 공기업이었다. 기근이 들거나 환란이 닥치면 구성원의 ‘자발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빈 임명장을 발행했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위기가 너무 잦았던 탓인지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임명장을 발행했다. 이러한 명예 통화의 ‘양적 완화’는 결국 격심한 ‘명예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 첨지의 ‘첨지’는 정3품 무관직인 첨지중추부사를 줄인 말이다. 말하자면 인력거꾼도 서로 국방부 장관이니, 참모총장이니 했던 것이다. 양적 완화가 이렇게 무섭다.

혹자는 명예를 얻고자 돈을 벌거나 돈을 벌고자 명예를 얻는 일이 속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분투하는 삶은 그래도 건강하다. 치열하게 사는 이들의 눈은 대체로 반짝거리게 마련이다. 오히려 모든 것을 얻은 나머지, 더 이상 불태울 열정이 없어 재만 남은 경우가 위험할 수 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이는 이제 내려오는 수밖에 없는데, 이때 우아하게 내려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는 어쩔 줄 몰라 정점의 언저리에서 잠시 서성이다 퇴락하고 만다. 중국의 삼국시대를 수놓은 수많은 영웅은 모두 천하 통일을 위해 인생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싸움 끝에 최고의 부와 명예, 그리고 새로운 통일제국의 황제가 된 이가 과연 공주님과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는지 어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서기 265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은 조조의 손자인 조환을 폐위시키고 진(晉)나라 초대 황제로 등극했다. 솔선해 사치 풍조를 엄격히 경계하고 몇 차례 국가적 위기를 현명하게 넘긴 그는 결국 서기 280년, 손권의 손자인 손호가 다스리던 오(吳)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을 가졌던 현군은 목표를 이룬 뒤 거짓말처럼 추락해 버렸다. 타는 목마름으로 일통황제라는 부와 명예를 갈망했던 사마염은 이제 타는 목마름으로 술을 찾았다. 궁궐의 하렘에는 1만 명의 궁녀가 각자 작은 집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황제는 누구와 자야 할지도 몰라 염소가 끄는 작은 수레에 올라 ‘혼술’을 하며 염소 발길이 가는 곳으로 가 그날 밤을 보냈다. 황제와의 동침을 원했던 궁녀들은 소금과 풀 따위를 뿌려서 염소를 자기 집 쪽으로 유인했다. 삶의 목적을 잃고 술에 취해 부유하는 몸뚱이를 궁녀들이 주워 재워줬다. 몸을 이렇게 굴리고도 오래 살기를 바랄 수는 없다. 결국 사마염은 통일 후 10년 만에 죽었고, 그가 죽은 지 26년 만에 진나라는 내란으로 망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독점하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너무 높이 날아오른 용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亢龍有悔).’ 가수 DJ DOC는 “돈 싫어, 명예 싫어”라고 노래했지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 정도에는 “싫어”라고 말해보는 것이 좋겠다.

안동섭 인문학자 dongsob.ahn@univ.ox.ac.uk
#명예 인플레이션#전매#재정#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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