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교와 조교[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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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화교(華僑) 특수부대 ‘SC(Seoul Chinese) 지대’가 구성됐다. 200명 규모로 육군 4863부대에 배속돼 대만에서 파견된 장교의 훈련을 받았다. 조선말과 중국어를 할 줄 알아 정보 수집과 포로 신문 등 방첩부대에서 활동했다. 북한도 화교를 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에 배속시켰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최근 펴낸 ‘한반도 화교사전’에 따르면 북한은 화교들을 수송 업무에 총 4400여 회 동원했고, 하역 및 축조 공사에 5만여 회 투입했다. 통역과 안내 서비스도 맡겼다. 구한말 들어온 청나라 병사와 상인의 후손인 화교들이 한반도가 분단되자 역시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것이다.

▷‘북한 화교’ 4명이 서울에 들어와 최근 난민 신청을 했으나 정부는 난민 인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북한 화교는 중국 여권은 있지만 북한 주민처럼 공민증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장기 거주하려면 별도의 공민증이 필요한데 3년 이상 거주, 일정한 경제적 능력 등 취득 요건이 까다롭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난민 자격 신청자들처럼 ‘중국 여권을 가진 무국적자’다. 북한 국적도 없어 탈북자 인정도 어렵다. 북한 내 화교는 광복 직후 4만여 명에서 이제는 4000∼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중국에는 북한 화교와 대비되는 조교(朝僑)가 있다. 이들은 북한 국적자이지만 중국 내에서 장기간 때로는 대를 이어 체류해 북한 내에 호적이나 연고가 없다.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수천 명에 이르는데 일정 주기로 주중 북한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북한 국적을 갱신한다. 중국 국적을 받는 건 어렵다. 이들은 광복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 국적의 소수민족이 된 조선족 동포와는 다르다. 한 60대 조교 여성이 지난달 30일 북한 여권을 갖고 인천공항을 통해 버젓이 입국해 탈북자 인정을 요구하며 체류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여성은 북한 여권은 갖고 있지만 ‘북한이탈주민보호법’상의 북한 주민이 아니어서 탈북자로 인정받진 못한다. 북한 화교처럼 국적이 애매한 ‘경계인(境界人)’이다.

▷북한의 화교나 중국의 조교는 비교적 자유롭게 북-중을 오가며 외화벌이를 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북-중 관문 랴오닝성 단둥에서 무역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는 주범이 아니냐는 눈총도 받았다. 북-중 사이에서 ‘특수 신분’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도 있는 화교와 조교까지 북한을 등지고 넘어오는 것은 북한에서 희망도 기회도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북한 화교#조교#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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