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은 없다” 승부처마다 현미경 분석…KBO 비디오판독센터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6일 15시 30분


코멘트
“들리십니까. ○○팀에서 1루, 2루 아웃 상황 관련 판독 요청입니다.”

“(잠시 후) 판독 결과 모두 아웃입니다.”

최근 야구장에선 경기를 중단한 채 심판진이 더그아웃 쪽에 들어가 헤드폰을 쓰고 대화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감독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심판들이 한국야구위원회(KBO) 비디오판독센터에 재심을 요청하고 최종 결과를 통보받는 모습이다. 대부분 원심이 유지되지만 비디오판독으로 판정이 번복되는 일도 있다. 승부처를 현미경처럼 분석하며 ‘제2의 심판’으로 자리 잡은 비디오판독센터를 18일 찾았다.

●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찰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4층 비디오판독센터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에 대형 모니터10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를 연상하게 했다. 모니터 10개 가운데 5개는 경기가 진행 중인 5개 구장의 생중계 화면을 비추고 있었다. 나머지 5개에는 방송사 송출 화면과 KBO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카메라(8대)가 찍어낸 영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니터 1개당 11개 정도의 화면이 담겨 있어, 모니터들을 잠깐 둘러보는데도 눈이 뻑뻑해졌다.

2017년 문을 연 판독센터는 김호인 센터장과 판독관 2명, 엔지니어 4명이 운영하고 있다. 판독관들은 현장 심판진으로 구성돼 조별로 2명이 일주일간 근무한다. 경기현장과 센터의 판정, 판독 시스템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서다. 비디오판독 요청이 접수되면 센터장과 판독관이 협의한 뒤 결정한다. 의견이 갈릴 경우 센터장이 최종 결정한다.

판독센터는 ‘클린 베이스볼(공정한 야구)’을 추구하는 것을 운영의 기본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화면의 확인을 통해 판독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애쓴다. 또 신속한 경기 진행과 부정행위 모니터링에도 공을 들인다.

그 결과 판정 번복률은 2017년 31.2%에서 올해(7월 16일 현재)는 26.9%로, 판독시간은 1분 20초에서 1분 4초로 각각 줄었다. 그만큼 현장 판정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김 센터장은 “비디오판독으로 판정이 번복될 경우 해당 심판이 벌점을 받기 때문에 경기에 더욱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비디오판독은 한 경기에 팀당 2번씩 요청할 수 있고 심판 직권으로도 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프로야구 현장을 두루 거쳤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에 삼미 외야수로 활동하다 1987년부터 21년간 심판을 지냈고 심판위원장, 경기감독관을 역임했다. 그에게 초대 센터장으로 3년째를 맞는 소감을 묻자 “경기가 시작하면 모니터 10개를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다. 매년 720경기를 지켜보는데 잘해도 본전 찾기가 어려운 자리”라고 말했다. 판독 결과에 따라 한쪽은 웃고 다른 쪽은 울 수밖에 없어 칭찬받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각 구장당 5분 이내에 판독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동시에 2개 구장에서 비디오판독을 요청할 때는 판독관과 엔지니어 모두 ‘멘붕(멘털 붕괴)’에 빠지기도 한다. 판독관과 엔지니어가 두 곳의 상황을 함께 처리하다 보면 5분을 넘기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 비디오판독으로 승부가 뒤바뀌기도

때론 비디오판독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7월 6일 열린 한화와 kt의 대전경기다. 이날 한화는 kt에 7-8로 뒤진 채 9회말을 맞았다. 1사 만루에서 김태균은 유격수 쪽 깊숙한 땅볼을 날렸다. 병살타 판정이면 kt의 승리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2루심과 1루심은 모두 1차 판정에서 아웃을 선언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비디오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판독센터의 분석 결과 김태균은 1루에서 세이프였다. 결국 3루 주자의 득점이 인정되면서 양 팀은 동점이 됐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치러진 10회 말 한화가 한 점을 더 뽑아내면서 역전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많은 카메라가 동원되지만 비디오판독이 쉽지만은 않다. 홈런이 폴대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투수의 바운드 된 볼이 타자의 방망이에 스쳤는지 할리우드 액션인지 등을 확인하는 일은 까다롭다.

지금은 비디오판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도입 초기만 해도 심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현장의 판정을 못 믿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경기장에서 심판을 보던 이들이 판독센터에서 일해 보니 더 스트레스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현장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비디오판독으로 보완할 수 있음을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 정밀한 판독 위해 입체 카메라 도입 추진

KBO의 비디오 판독센터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운영방식을 따르고 있다. 미국 뉴욕의 메이저리그 비디오판독센터에 사용하고 있는 장비와 운영시스템을 들여왔다. 미국은 구단이 30개나 되고 지역 간 거리가 멀어 24시간 체제로 운영된다. 반면 국내에선 평일 저녁 경기 기준으로 오후 4시부터 시스템 점검을 시작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만 가동한다.

김 센터장은 “판독센터에서는 아웃, 세이프는 물론 주루 방해, 고의성 등을 복합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포수가 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쇄도하는 타자 앞에서 홈플레이트를 가리고 있다면 주루 방해다. 반면 공을 잡고 있는 상태라면 홈플레이트 앞에 발을 두고 있어도 괜찮다.

판독센터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KBO는 자체 카메라를 매년 추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판독할 때 방송사 화면에 70% 정도 의존하고 있다. KBO 카메라는 고정돼 있는 데다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의해 입체영상 카메라 도입을 추진 중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인-아웃을 판정하는 호크 아이를 야구에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판독센터는 평균적으로 경기가 끝나는 오후 10시 반경 마무리되지만 경기가 연장으로 이어지면 근무시간도 길어진다. 주요 판독 장면은 자료로 만들어 별도의 장비에 저장하고 있다. 승부 조작 사건 같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 센터장은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실수가 있을 수 있어서 비디오판독 역시 오독을 최소화하도록 매일 눈을 부릅뜨고 있다”며 “깨끗한 프로야구를 만들기 위해 판독센터도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 비디오판독센터는 경기장에서 이의신청이 들어온 상황을 다양한 화면으로 분석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판독센터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김호인 센터장(사진 맨 왼쪽)과 엔지니어들이 경기 자료 화면을 보며 시스템을 점검한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 10개의 모니터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김재명 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 비디오판독센터는 경기장에서 이의신청이 들어온 상황을 다양한 화면으로 분석해 최종 결론을 내린다. 판독센터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김호인 센터장(사진 맨 왼쪽)과 엔지니어들이 경기 자료 화면을 보며 시스템을 점검한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 10개의 모니터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김재명 기자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