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적반하장[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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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반성은 없이 경제보복… 국제 여론도 한국 편에 설 것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작년에 일본 자동차를 샀다. 후회한다. 일본 음식과 자연을 좋아해 종종 놀러갔다. 그러나 일본이 경제 보복을 철회할 때까지는 일본 여행을 가지 않고 전범 기업의 제품도 사지 않을 생각이다.

감정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반(反)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정당한 항의이고, 역사 문제를 현재의 경제 보복으로 연결해 국제 무역질서를 퇴행시키는 행위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다. 갈등이 계속되면 우리도 피해를 보겠지만, 싸우려고 작정한 상대에게 무조건 굽히는 것은 사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영원한 굴종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시초가 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부터 따져보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일본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일 협정으로 한국이 ‘경제협력자금’을 받았지만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다는 것은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일본 변호사들도 여러 차례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정부가 이를 부인하며 일본 기업의 배상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는 공식 사과하고 배상했다. 중국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서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중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와 니시마쓰건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들에서 일본 재판소는 “개인 청구권도 포기한 걸로 봐야 한다”고 피해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중국 정부와 언론들은 일제히 “전쟁 배상은 국가(정부)와 개인이 구분된다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고 관례”라면서 “조약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일본 재판소를 비난했다. 깜짝 놀란 일본 기업들은 중국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기금을 조성해 위자료나 화해금 등의 이름으로 배상해 왔다.

아베 정부가 한국과 중국을 다르게 대접하는 것은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한 비열한 태도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걸핏하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등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삼권분립이 엄연한 한국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정부를 비난하며 강자의 지위를 이용해 겁박하다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한국은 이제 1965년 3억 달러(약 3500억 원)를 받아 포항제철을 건설하던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이면 경제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부품·소재 수출산업은 세계 5위로 일본 다음이다. 민관이 합심하면 국산화 못할 것도 없다. 일본 관광객 중 한국인이 24%나 된다. 매년 일본에서 6조 원 넘게 쓰던 돈을 끊으면 일본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 아베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도록, 함부로 한국에 싸움을 걸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5년 강제징용 문제를 다룬 민관공동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이 분야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1+1(한국 기업+일본 기업) 기금을 제안한 것도 많이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 되레 수출 규제를 하며 ‘한국 길들이기’에 나선 아베에게 화가 날 법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을 생각해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양국의 법체계와 협정에 대한 해석이 다른 만큼 확전을 하기보다 서로 성의를 보이는 선에서 외교적으로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외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은 단합된 힘으로 일본의 부당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아베 신조#일본 경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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