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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찾은 프랑스 알자스 시댁[포도나무 아래서]〈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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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찾은 프랑스 알자스 시댁[포도나무 아래서]〈32〉

신이현 작가입력 2019-07-23 03:00수정 2019-07-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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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프랑스 알자스 시댁에 왔다. 한국에 산 지 거의 3년 만이다. 그동안 집에 가서 식구들 보고 오라고 말했지만 레돔은 거절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고향 음식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프랑스어로 수다 떨고 싶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좀 이상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원래 한국 충주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묵묵히 일만 한다. 어떻게 향수병이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하고 돌아온 뒤 프랑스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나 더 바란다면 아침만 프랑스식으로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농사 때문에 멀리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어놓은 나무가 말라죽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발효 탱크에 들어간 시드르(사과즙을 원료로 한 발효주)에 악당 효모가 나타나 망칠까 봐 잠시도 자리를 비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평생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이 나무들 때문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악당 효모들 때문에. 그냥 직장을 다니지 왜 일을 벌여 나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것이 산다는 것인가?”

이것은 지난 3년 동안 레돔을 따라다니며 내가 불렀던 똑같은 레퍼토리다. 그는 죄인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가 봤자 충주 땅에서 어딜 가겠는가, 친구도 식구도 없는데. 갈 곳이라고는 밭뿐이고, 간 김에 나무를 보고 풀을 맸다. 날아다니는 딱정벌레와 지렁이를 보곤 기분이 좋아져서 사진을 찍고 하느라 슬픔은 싹 잊어버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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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우리 땅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그는 내가 좀 전에 무서운 레퍼토리를 쏘아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이처럼 자신의 밭을 자랑한다. 나는 내일 아침에는 그를 위해 맛있는 빵을 구워야겠다고 다짐하고 반성한다. 뭐, 이런 것이 인생인가 보다.

“프랑스에 가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가 물었다. 일전에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에게 기자들이 물었던 말이다. 그는 충무김밥과 자신의 애견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무심결에 나오는 이런 말을 들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무리 거대한 인간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이렇게 사소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다 필요 없다, 지금 나는 집에 가서 사랑하는 개와 뒹굴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인간에게는 이런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파리 서역에서 브레첼을 사먹고 아빠에게 샤를로트 케이크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 레돔의 대답은 이랬다. ‘그만 진정하고 나한테 브레첼을 하나 줘.’ 이것은 알자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공항에서 파리 서역에 도착하자 그는 당장 ‘브레첼부터 먹어야지!’ 하는 설레는 얼굴로 빵집을 향해 사라졌다. 알자스행 기차를 타는 서역은 예전엔 알자스 식당이 굉장히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고향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린 왕자가 여우와의 약속 한 시간 전부터 행복해진다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겠지. 이제 돌아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잖아.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폐가 말이다. 난 이제 다 쓴 기계다….” 이것은 시아버님이 우리를 만났을 때 하는 똑같은 레퍼토리다. 만난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별 이야기를 하신다. 레돔은 샤를로트 케이크를 만드느라 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정신이 없다. 작고 붉은 열매들을 짓이겨 즙을 만들고 초콜릿을 녹이고 계란 흰자 거품을 낸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반죽이 엉망이 됐다. 3년 만에 만드는 케이크를 망치자 그는 아버지에게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똑같은 레퍼토리는 제발 좀 그만하세요!’ 이제 그는 고향 집에 돌아온 평범한 아들이 되었다. 충주로 가기 전까지 잘 충전하세요, 사장님.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알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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