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日 규제 조치, 세계 무역질서 물 흐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6일 1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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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대북제재 문제 등을 이유로 한국에 전략문자의 수출을 제한한 조치를 놓고 “국가안보를 남용해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처럼 개념이 모호한 국가안보를 앞세워 무역규제 조치를 ‘무기화’하는 사례가 이어질 경우 세계 무역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해외 전문가와 언론의 엄중한 경고다.

뉴욕타임스는 15일(현지 시간) 일본의 이번 조치를 언급하며 “이는 무역분쟁이 통제 불가능한 선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 세계가 오랫동안 구축해온 글로벌 질서를 약화시키고 있다”며 “무역질서가 일단 약화되면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점점 더 일반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를 연구해온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일본이 수출 제한을 안보 행보로 규정함으로써 (글로벌 무역질서의) 물을 흐렸다”고 우려했다. 홍콩 중국대의 브라이언 머큐리오 박사도 “이런 조치가 너무 자주 사용되면 국제 무역 시스템을 통째로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며 “한 두 국가가 아닌 10~15개 국가들이 잘못 규정된 국가안보 예외조항에 근거해서 이런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면 규범을 훼손하게 된다”고 말했다. 호주 멜버른대의 타니아 분 박사 역시 “사실상 모든 문제에 국가안보를 연관시켜 문제삼기는 꽤 쉽다”며 국가안보라는 개념의 남용 가능성을 경계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한일 간 분쟁은 국가안보를 노골적으로 남용해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직면한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안보를 문제삼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포린폴리시는 이는 글로벌 무역장벽을 낮추기 위해 수십 년간의 노력과 성과를 되돌리는 결과가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가 미국의 관세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해외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했다. 특정 물품의 수입 증가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산업이 피해를 볼 경우 정부가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했다. 현재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도 같은 규정에 근거해 검토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에는 남부 국경의 불법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멕시코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란 같은 적성국과의 교역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이례적으로 적용했다. 그것도 6월 관세율 5%에서 시작해 매달 5%포인트씩 추가로 올리는 노골적인 압박의 방식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행을 코앞에 두고 멕시코와의 협상을 통해 이 계획을 철회했지만 당시 “국내 정치적 문제를 해외 통상 분야의 협박 카드로 풀려 한다”는 거센 비난이 일었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도 유사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통상 전문가들의 우려를 키우는 원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분쟁을 벌일 때 외교안보를 이유로 비관세 제재 조치를 취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UAE도 지난해 카타르와 단교함으로써 수출길을 사실상 막아버렸다. 미국의 화웨이 규제 조치로 경제 타격을 받고 있는 중국도 막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이유로 한국에 경제보복을 한 것은 물론 과거 일본의 희토류 수출 제한, 필리핀 바나나 수입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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