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 경기 평택시의 해군 2함대사령부 내 탄약고에서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한 거동수상자는 인근 초소의 경계병으로 밝혀졌다. 뒤늦게나마 대공 용의점은 털어냈지만 사건 초기 부실 조사를 한 부대장과 허위 자백, 은폐 조작 사실을 알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해군 지휘부에 대한 고강도 문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2함대사 A 상병은 당시 경계초소 근무 중 음료수를 사려고 약 200m 떨어진 생활관 내 자판기에 다녀오다가 탄약고 경계병에게 발각되자 수하에 불응하고 달아났다. 소총을 초소에 두고 전투모와 전투조끼만 착용한 채로 근무지를 이탈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후 사태가 커지자 A 상병과 동반 근무자는 두려운 마음에 자수하지 못하고 도주 사실을 숨긴 것으로 확인됐다고 군은 전했다.
군 관계자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내부 소행으로 보고 사건 당시 근무한 경계병 20여 명을 용의자로 압축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반 근무자의 관련 진술을 토대로 A 상병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 13일 새벽에 검거했다”고 말했다. 2함대에서 발견된 고무보트와 오리발 등도 적 침투 상황과 무관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군은 전했다.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그 처리 과정에서 총체적 군 내 기강 해이와 무사안일주의가 낱낱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2함대는 사건 다음 날(5일) 부대 간부의 제의로 허위 자백을 한 병사의 진술을 그대로 믿고 자체 종결했다.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서둘러 덮은 것이다. 하지만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12일 급파된 군 수사단은 현장 조사 하루 만에 진범을 붙잡았다. 군 수사단 측은 “부대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조사한 결과 허위 자백을 한 B 병장이 사건 발생 시간에 생활관에 머문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 2함대가 CCTV 조사 같은 기초적 수사도 하지 않은 것.
해군 지휘부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대장)은 9일 2함대사령관으로부터 허위 자백 및 은폐 조작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군 수사단 측은 “해군은 이번 사건이 작전 상황이 아니고, 국방부 훈령의 지휘보고 및 참모보고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국방부 등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심 총장은 5일 서해 덕적도 기지를 방문해 만반의 경계태세를 강조하면서 “사소한 것도 반드시 확인하고 적시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예하 부대의 중대한 군기문란 사건을 파악하고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 수사 결과 합참의 작전본부장과 작전부장 등은 9일 해군에서 허위 자백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작전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한기 합참의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군 안팎에선 말단 병사부터 지휘부까지 ‘면피’와 눈치 보기에 길들여진 게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육군의 한 사단장은 “언제부터인가 군 내에서 사건이 터지면 책임감을 갖고 소신껏 대처하기보다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상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부터 걱정하는 기류가 뚜렷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도 무슨 수를 쓰든지 상부의 책임 추궁을 피해야 부대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는 군 내 분위기가 민낯을 드러낸 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훈련의 축소, 중단 등 대북 유화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군이 내부적으로 허물어지는 징후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군 수뇌부의 우유부단함과 결기가 사라진 지휘 방침이 군을 물렁하게 만들고 진급에 목매는 ‘예스맨’ 지휘관을 양산한다는 우려가 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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