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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없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사드 사태로 속만 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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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없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사드 사태로 속만 끓여”

신나리기자 입력 2019-07-14 13:20수정 2019-07-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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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백원
“‘(중국정부가) 이곳(동산백원)에 광저우(廣州)의 역사적인 건물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지고, 한국의 임시정부 유적지였다는 것도 (표지석에) 들어갈 것’이라 했는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됐다.”

12일 중국 광저우에서 만난 재중사학자 강정애 씨(61·여·사진)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낸 2016년 이후를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강 씨는 2017년 2월 광저우 총영사관과 광저우시가 임시정부 청사의 현 위치와 건물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은 공신이다. 그런 그가 한중관계 부침 속에 속을 끓여야만 했던 사연을 처음으로 꺼냈다.

12일 오후 중국 광저우의 한 호텔, 외교부 기자단과 인터뷰 중인 강정애 박사.
강 씨는 “2017년 10월 한중 양국 정부가 사드 합의를 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살벌하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여길 왜 빨리 우리 소유로 안하느냐, 빨리 해라’ 하는데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기념관을 세운다 해도 우리가 운영을 못하고 중국 정부가 해야 되더라. 지금 상태로는 조금 어렵다”고도 했다.



주광저우총영사관에서 행정관으로 18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퇴직한 강 씨는 2013년 5월경부터 동산백원과 연을 맺게 됐다. 당시 새 건물로 이사를 한 총영사관에서 ‘과거 임정 유적지를 찾아 기념비나 기념석을 세워보자’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광저우는 1938년 7월22일부터 9월19일까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임정이 최단기로 머물렀던 곳이지만 백범일지 등 광저우 임정 관련 문헌들에서 ‘동산백원(東山柏園)’이라는 공통적인 소재지를 찾아낸 강 씨와 총영사관은 아랑곳 않고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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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휼고원로 35번지 동산백원’. 이들도 처음부터 광저우 임정 터가 현존할 거라 생각진 않았다. 당초 학계 및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일제의 폭격으로 멸실됐을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중국 3차 전국대표대회를 했던 자리가 휼고원로 31번지인데 그게 1938년도에 피폭으로 없어졌기 때문에 임정이 사무실로 사용한 35번지 동산백원도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청사가 있었던 자리인데 어디에 기념비를 세우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전문기관 3곳에 의뢰하고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동산백원이 언급된 과거 문헌들을 긁어모아 광동성역사혁명관, 광동성문물국, 대만 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에 보냈지만 공문이 오지 않거나 “피폭됐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러던 2015년 12월, 반가운 답장이 왔다. 대만 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가 “2008년에 연구소 설립 8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DVD 안에 동산백원 사진이 있다”면서 사진과 DVD를 보내온 것. 동산백원 건물을 1928년 10월에서 1929년 6월간 사용한 연구소가 건물 1층을 직은 사진이었다. 강 씨와 총영사관은 즉시 “우리에게 이런 자료가 있다 좀 찾아달라”며 중국 광동성 문물국(문화국)에 보냈다. 곧 문물국 산하 연구기관으로부터 대만에서 보내준 사진과 동일한 현재의 동산백원 입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구 빗금과 두 그루의 나무까지 현존한다는 사실을 처음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강 씨는 “찾자마자 굉장히 흥분했었다. 당장이라도 이것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중국 정부가 동산백원 일대를 건축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매매가 불가능했기 때문. 임정 전시관으로라도 사용하고 싶었지만 중국 정부는 “언젠가 주인이 나타나 권리를 요청하면 관리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하다못해 임정 표지판이라도 세우고 싶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드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요원해진 상황이라고 강 씨는 전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광저우 임정청사 소재지인 동산백원, 동산백원 옆 휼고원로 33번지, 대만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가 2008년에 연구소 설립 8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DVD 속 1926년 동산백원 사진.
2019년 7월 현재 동산백원은 중국 노동자들의 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강 씨는 “건물 소유주가 부동산 등기권리를 가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당 정부가 쓰기 위해 지어놓고 사용하다가 일본군이 광저우를 점령하고 빠져나가면서 주인 없는 땅이 돼버린 뒤 이후 국민당 정부 관계자들이 되돌아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소유권이 엉킨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30일경 중국 정부가 건물주 신고를 받았을 때 싱가포르에서 온 한 인물이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다’며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로서도 여러모로 민감한 동산백원을 건드리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우리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중국에서 볼 때는 두 달 동안 살다가 갔고 빌려준 건데 왜 소유를 주장하느냐 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될 때도 있다”는 강 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임정 청사를 찾고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만 봐야 하는 우리 정부의 안타까움은 더해간다. 동산백원 왼편에 있는 33번지 역시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어 간접적으로 내부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적다. 강 씨는 “근처를 지나가면서 슬쩍슬쩍 보았지 들어가서 일일이 볼 순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 광저우총영사관은 꾸준히 동산백원에 광저우 임정 흔적을 새기기 위한 노력을 꾀하고 있다. 이제는 바깥에서 물밑으로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강 씨는 “향후에는 임정 유적지였다는 표지를 세우게 되지 않을까, 시간적인 문제지만 조금 기다리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광저우=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외교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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