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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사진 한 장으로 찾아낸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 ‘동산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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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사진 한 장으로 찾아낸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 ‘동산백원’

신나리기자 입력 2019-07-14 13:02수정 2019-07-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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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중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한중우호카라반 대표단원 100명, 임정 요인들이 1945년 환국 기념사진 촬영했던 임정청사 계단에서 애국가 제창 후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맨 앞줄은 왼쪽부터 장재복 외교부 공공외교대사, 서은지 한중우호카라반 단장, 장제학 주청뚜 총영사.)
“예전에는 임시정부청사가 일제 피폭으로 없어진 줄 알았어요. 대만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가 보내준 1920년대 동산백원 입구사진과 여러분들이 보신 입구 사진이 동일했어요. ‘여기가 바로 1938년 7월부터 9월까지 사용했던 동산백원, 임정이구나’…”


12일 오후, 중국 광저우(廣州) 시내의 한식당. 재중사학자 강정애 씨(61)는 오랜 노력 끝에 광저우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던 건물이 현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그 벅찬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마주 앉아있던 청년 100명의 눈이 빛났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청년 100명이 임시정부 활동 근거지를 역순으로 돌아보는 ‘한중 우호 카라반’(외교부 주최) 20, 30대 국민대표단이다.

대표단은 이날 오전 내내, 1926년 당시 사진 한 장을 들고 동산백원 위치를 찾아 헤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섭씨 32도의 찜통더위 속에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임정 유적을 더듬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보고도 지나치길 여러 번했던 사진 속 대한민국광저우임시정부 유적지 혈고원로후 35번지는 현재 광저우시 월수구 휼고원로 12호로 주소만 바뀌었을 뿐 건물 그대로 남아있다.


앞서 9일 중국 충칭(重慶)에 도착한 이들은 가장 먼저 임정의 마지막 활동지인 충칭 임정 청사를 방문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1945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마지막 임정청사로, 이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광복을 맞이했다. “이렇게 큰 임정청사는 처음 본다”며 연신 탄성을 지른 대표단 청년들은 청사 내 이른바 ‘충칭의 계단(백범의 계단)’에서 애국가 제창 후 만세삼창을 했다. 1945년 11월 3일 귀국을 앞둔 임정요인들이 환국 기념사진을 촬영했듯 당시의 감격을 되새기며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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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임정청사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광복군 제 1대 비서이자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받은 이달 선생 장녀 이소심 여사(80) 덕분이다. 1990년 충칭 임정 청사가 들어선 위중구 롄화츠(蓮花池) 38호 주변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청사가 헐릴 위기에 처했을 때 충칭에 나와 있던 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을 찾아 한국 외교부에 알려 달라고 부탁했고 수차례 교섭 끝에 청사를 지켜낸 인물이다.

이 여사는 이튿날인 10일 오후 간담회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부국강병이 될 수 있었던 건 선열들의 피와 맞바꾼 것이기 때문”이라며 아울러 “한국 임정이 유랑했던 27년 동안 중국 정부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런 우의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청년들에게 주문했다.

10일 오전에는 충칭의 ‘명동’인 해방광장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광복군 총사령부 터도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잠시 열었다. 2017년 12월 한·중 정상회담 후 양국이 복원을 진행하기로 한 뒤 아직 내부 복원이 한창인 까닭에 외부 공개를 하고 있지 않지만, 한중우호카라반을 위해 특별 개방한 것이다.


1층 사료관에서 1940년 9월 17일 김구 주석, 지청천 총사령, 중국 공산당 저우언라이 등이 참석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기념사진을 복원해놓은 모형 앞에서 즐겁게 기념촬영하던 대표단은 2층에 복원된 약산 김원봉 집무실과 한국광복군의 군복, 무기 모형 전시 앞에서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정훈 장교로 복무하다 지난달 30일 전역한 대학생 구한별 씨(25)는 “당시 일본의 폭격까지 벌어진 중국 일대에서 이렇게 열악한 군복과 무기로 훈련하며 독립운동을 도모했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우리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임을 새삼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14일로 일정 6일차에 접어든 국민대표단은 임정 유적 현장을 탐방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도시별로 역사문화콘서트를 통해 역사의식을 되새기는 한편 한중간의 우호도 다지고 있다. 12일 광저우에서 열린 공공외교대화에 중국 대표로 참석한 우하이윈(巫海云) 씨(21·여)는 “한중 양국이 유교문화를 콘텐츠 내용으로 한중시장이나 해외시장에 진출한다면 한중 양국 이미지가 높아지고 외교적 노력에서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고 한국 대표단 일원이었던 박수연 씨(24·여)는 “우리 청년세대가 한중우호를 위한 매개체로서 소프트파워를 활용해왔으며 앞으로 더 광범위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3일 창사(長沙)에서는 한중 우의 식수식도 거행됐다. 한국과 북한, 중국 세 곳에서 훈장을 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 유자명 선생(1894~1985)를 기리며 생전에 그가 강단에 섰던 후난농업대 안에 마련된 유자명 기념관 앞에서 유 선생의 장남인 류전휘 선생과 대표단 학생, 김영근 주우한 총영사, 저우쉐샤오(鄒學校) 후난농업대 총장, 카라반 단장을 맡고 있는 서은지 외교부 공공문화외교국 심의관이 첫 삽을 떴다. 류 선생은 식수 직후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만나 “청년들이 선조들의 애국심을 배워갔으면 좋겠다”며 직접 ‘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한자성어를 직접 적어 전달했다.

13일 오전 후난성 창사시 푸룽구 호남(후난)농업대학에 위치한 유자명 기념관, 한중 우의를 상징하는 나무를 함께 심는 장면. 왼쪽부터 김영근 우한 총영사. 류전휘 선생, 한중우호카라반 윤보영 단원, 서은지 단장, 저우쉐샤오(邹学校) 후난농업대 총장.
대표단 일원인 유효정 씨(24·여)는 “유자명 선생과 본관(문화 유씨)도 같고 파까지 같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알게 돼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 선생을 몰랐던 것에 부끄러웠다”며 “식수를 참여하고 싶었는데 삽을 뜨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식수 끝난 뒤 손으로 흙을 한 번 더 다독다독 덮어봤다”고 말했다. 표지 제막식에 참여한 신동엽 씨(26)는 “20여년 간 많은 압박이 있었음에도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신 유자명 선생을 본받고 싶다. 청년들이 취업난 속의 유 선생의 올곧은 자세를 잘 기리고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중 우호 카라반 대표단은 15일 항저우(杭州)를 떠나 자싱(嘉興)을 거쳐 상하이(上海)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17일 서울로 돌아온다.

충칭·광저우·창사=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외교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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